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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정복하고 화랑도를 정비하며 전성기를 이끄는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렇게 성장한 신라가 결국 백제를 무너뜨리게 되는 660년 백제 멸망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계백의 5천 결사대와 황산벌 전투, 의자왕의 항복, 그리고 이후 이어진 백제부흥운동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시기 기록을 볼 때마다, 나라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
나당연합군, 결성되다
백제 멸망의 배경에는 신라와 당의 특별한 동맹이 있었고,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642년, 대야성 함락과 김춘추의 비극
642년, 의자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신라 서쪽의 40여 성을 함락시켰고, 장군 윤충을 보내 신라의 요충지 대야성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이때 대야성을 지키던 김품석과 그의 아내, 즉 김춘추의 딸이 함께 목숨을 잃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김춘추는 이 일을 계기로 백제를 반드시 무너뜨리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648년, 나당동맹의 성립
김춘추는 직접 당나라로 건너가, 당이 먼저 백제를 멸망시켜 준다면 신라가 당을 도와 고구려를 남쪽에서 협공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당 태종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648년 나당동맹이 성립되었습니다. 이로써 백제는 신라와 당, 두 나라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대야성 — 지금의 경남 합천에 있던 신라의 요충지. 나당동맹 — 648년 신라와 당이 맺은 군사 동맹.
642년 대야성 함락으로 딸과 사위를 잃은 김춘추는 648년 당과 동맹을 맺어 백제 멸망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660년, 황산벌 전투
나당연합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백제는 마지막 방어선에서 처절한 저항을 펼치게 됩니다.
계백의 5천 결사대
660년, 나당연합군이 사비성으로 진격해오자 의자왕은 장군 계백에게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신라군을 막아서게 했습니다. 계백은 살아서 적국의 노비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처자식을 직접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황산벌 전장에 나섰다고 전해집니다.
반굴과 관창, 그리고 백제군의 패배
계백의 5천 결사대는 신라군과 네 차례 싸워 모두 승리를 거둘 만큼 용맹했습니다. 그러나 신라의 어린 화랑 반굴과 관창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진에 뛰어드는 모습에 크게 감격한 신라군은 사기가 치솟았고, 결국 총공격 앞에서 계백의 결사대는 중과부적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5천 명이 몇 배나 되는 대군을 네 번이나 이겼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하지만 전쟁은 숫자와 사기의 싸움이기도 해서, 어린 화랑들의 희생이 오히려 승부를 갈랐다는 점이 참 씁쓸하기도 해요."
황산벌 — 지금의 충남 논산 일대로, 백제 멸망 직전 최후의 격전지.
660년 계백의 5천 결사대는 황산벌에서 신라군에 네 차례 승리했지만, 반굴·관창의 희생으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의 총공격에 결국 패배했습니다.
사비성 함락과 의자왕의 항복
황산벌에서 마지막 방어선이 무너지자, 백제의 운명은 순식간에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나당연합군의 사비성 공격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한 나당연합군은 곧바로 백제의 수도 사비성으로 진격했습니다. 의자왕은 도읍을 떠나 피신했고, 남아 있던 왕자 부여태가 스스로 왕을 자처하며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의자왕의 항복과 백제의 멸망
당군이 사비성에 깃발을 꽂자 성은 하루 만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의자왕도 붙잡혀 항복했고, 백제는 온조왕이 나라를 세운 지 약 70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사비성 — 성왕이 천도한 백제의 마지막 도읍, 지금의 충남 부여.
황산벌 전투 패배 이후 나당연합군은 사비성을 함락시켰고, 의자왕의 항복으로 백제는 660년 멸망했습니다.
백제부흥운동과 백강 전투
그러나 백제의 저항은 여기서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각지에서 부흥운동이 일어나며 마지막 불씨를 태웠습니다.
흑치상지와 복신의 부흥운동
사비성이 함락되자 달솔 흑치상지는 임존성을 거점으로 열흘 만에 3만 명의 병력을 모아 당군을 격퇴하고 200여 성을 되찾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한편 귀실복신과 승려 도침은 왜국에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하며 부흥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실제로 나라가 무너진 직후 열흘 만에 3만 병력을 모았다는 기록을 보면, 백제 유민들의 저항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663년 백강 전투, 부흥운동의 좌절
백제 부흥군은 왜에서 온 4만여 원군과 함께 663년 백강에서 나당연합군과 맞붙었습니다. 그러나 네 차례에 걸친 전투 끝에 크게 패배했고, 왜의 배 400척이 불타며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패배로 백제부흥운동의 지도부는 사실상 무너졌고, 백제를 되살리려는 마지막 시도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3만 병력을 모아 200개가 넘는 성을 되찾았다니, 백제 유민들의 저항은 정말 끈질겼어요. 비록 백강 전투에서 꺾이긴 했지만, 이 저항의 역사는 백제가 그냥 힘없이 사라진 나라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백강 전투 — 663년 백제부흥군·왜 연합군과 나당연합군이 맞붙은 전투. 임존성 — 흑치상지가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으로 삼은 성.
흑치상지·복신을 중심으로 한 백제부흥운동은 한때 200여 성을 되찾았지만, 663년 백강 전투 패배로 완전히 좌절되었습니다.

마무리
642년 대야성 전투로 시작된 김춘추의 원한, 648년 나당동맹, 그리고 660년 황산벌 전투와 사비성 함락까지, 백제는 결국 나당연합군 앞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흑치상지와 복신의 부흥운동이 한때 희망을 보였지만 663년 백강 전투 패배로 그 불씨마저 꺼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백제에 이어 고구려 역시 무너지게 되는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 백제 멸망 타임라인
642년 — 대야성 함락, 김춘추의 딸과 사위 전사
648년 — 나당동맹 성립
660년 — 황산벌 전투, 계백의 결사대 패배
660년 — 사비성 함락, 의자왕 항복, 백제 멸망
663년 — 백강 전투, 백제부흥운동 좌절
📘 시리즈 목록
▶ #011 신라의 건국과 성장 — 박혁거세의 사로국부터 내물왕의 마립간 시대까지
▶ #012 광개토대왕, 백제·신라·요동을 정복하다 - 영락의 시대를 열다
▶ #013 삼국의 한강 쟁탈전 — 장수왕의 남진부터 관산성 전투까지
▶ #014 백제의 전성기 — 근초고왕의 정복부터 침류왕의 불교 공인까지
▶ #015 신라의 전성기 — 진흥왕, 대가야 정복부터 화랑도까지
▶ #016 백제의 멸망 — 황산벌 전투부터 백강 전투까지 —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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