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이 끝났지만, 조선 땅에는 깊은 상처만 남아 있었습니다. 국토는 황폐해졌고 인구는 크게 줄었으며 국가 재정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 폐허 위에서 1608년 왕위에 오른 인물이 바로 광해군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해군의 즉위와 전후 복구 정책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전쟁이 남긴 상처2. 광해군, 왕위에 오르다3. 대동법의 첫걸음4. 허준과 동의보감전쟁이 남긴 상처 황폐해진 국토7년에 걸친 전쟁으로 농경지는 크게 줄어들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경복궁을 비롯한 주요 궁궐과 문화유산도 전화 속에 소실되었습니다.바닥난 국가 재정농경지 감소와 인구 손실은 곧바로 세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전쟁 이후 조선 조정은 당장 나라 ..
평양성 탈환 이후 전쟁은 한동안 지루한 강화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결렬되자 왜군은 1597년 다시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정유재란의 발발부터, 이순신이 마지막 숨을 거둔 노량해전까지, 7년 전쟁의 대단원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강화 협상의 결렬2. 1597년, 명량대첩의 기적3. 도요토미의 죽음과 철군4. 1598년,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전사강화 협상의 결렬지루하게 이어진 협상평양성 탈환 이후 전선이 교착되자, 명과 일본 사이에 강화 협상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측의 조건 차이가 워낙 커서 협상은 좀처럼 타결되지 못했습니다.1597년, 재침공결국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7년 다시 대군을 보내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이를 앞선 전..
[이순신이 바다에서 제해권을 지켜내는 동안, 육지에서도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무너진 관군을 대신해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의병의 봉기와, 이어진 평양성 탈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곽재우, 홍의장군의 활약2. 조헌과 승병들의 저항3. 명나라의 참전4. 1593년, 평양성 탈환곽재우, 홍의장군의 활약가장 먼저 일어난 의병경상도 의령의 곽재우는 임진왜란 발발 직후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는 붉은 옷을 입고 전장을 누벼 '홍의장군'이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지형을 이용한 유격전곽재우는 낙동강 유역의 지리를 잘 활용한 유격전으로 왜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그의 활약은 다른 지역 의병 봉기에도 큰 자극이 되었..
부산진과 동래성이 무너지고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조선에는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이순신의 활약과 한산도대첩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미리 대비한 이순신2. 거북선과 초기 해전의 승리3. 1592년 7월, 한산도대첩4. 제해권 장악이 가져온 변화미리 대비한 이순신전라좌수사 부임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왜침에 대비해 왔습니다. 그는 판옥선을 정비하고 수군의 훈련을 철저히 다졌습니다.전쟁 직전의 대비가 빛을 발하다다른 전선에서 조선군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것과 달리, 이순신이 지휘하는 전라좌수영만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져 붕당 간의 다툼에 빠져 있던 조선은, 정작 국경 너머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위협에는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규모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1592년 임진왜란의 발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2. 통신사의 엇갈린 보고3. 1592년, 부산진과 동래성 함락4. 파죽지세로 북상하는 왜군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일본 전국시대의 통일오랜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내부의 불만 세력을 밖으로 돌리고 대륙 진출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 침공을 계획했습니다.명나라 정벌의 명분그는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며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는 이른바 정명가도를 요구했습니다...
을사사화 이후에도 외척 정치의 폐해는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명종 말년에 이르러 그 힘이 서서히 약화되면서 사림파는 다시 중앙 정계로 복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뜻밖에도 사림파 내부에서 새로운 갈등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1575년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는 붕당정치의 시작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사림파, 정계를 장악하다2. 이조전랑이라는 요직3. 김효원과 심의겸의 대립4. 동인과 서인, 붕당정치의 개막사림파, 정계를 장악하다약해진 외척 세력명종 말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위세를 떨치던 소윤 외척 세력의 힘도 함께 약화되었습니다. 이는 사림파가 다시 정계로 복귀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선조 즉위와 사림의 전성기1567년 선조가 즉위한 뒤 사림파..
기묘사화로 조광조와 신진 사림이 몰락한 뒤, 조선의 정치는 다시 훈구 세력이 주도하는 국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성격의 갈등, 즉 왕비 집안 간의 외척 다툼이 새로운 사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1545년 을사사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두 왕비, 두 외척2. 인종의 짧은 재위3. 명종 즉위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4. 1545년, 대윤의 몰락두 왕비, 두 외척장경왕후와 대윤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는 세자(훗날 인종)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을 대윤이라 불렀습니다.문정왕후와 소윤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는 이후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았습니다. 그녀의 동생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은 소윤이라 불렸습니다..
반정 공신들의 그늘 아래 즉위한 중종은, 그들을 견제하고 새로운 정치를 펼치기 위해 신진 사림 조광조를 파격적으로 등용했습니다. 조광조는 뜨거운 이상을 품고 개혁에 나섰지만, 그 급진성은 결국 그 자신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이번 편에서는 조광조의 개혁과 1519년 기묘사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조광조, 중종의 신임을 얻다2. 현량과와 급진 개혁3. 위훈삭제, 공신들을 겨누다4. 1519년, 주초위왕과 기묘사화조광조, 중종의 신임을 얻다뛰어난 학문과 강직함조광조는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강직한 성품으로 젊은 나이에 이미 명망이 높았습니다. 중종은 그를 발탁해 개혁 정치의 중심에 세웠습니다.빠르게 성장한 위상조광조는 짧은 시간 안에 대사헌 등 요직에 오르며 조정 내 강력한 영향력을 갖추게 ..
갑자사화 이후 견제 세력을 모두 잃은 연산군의 폭정은 갈수록 극심해졌습니다. 사냥과 향락에 몰두하며 국고를 탕진하고, 언로를 완전히 틀어막은 그의 통치는 이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506년 벌어진 중종반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극에 달한 연산군의 폭정2. 박원종 등의 거사 준비3. 1506년, 반정의 밤4. 진성대군, 중종으로 즉위하다극에 달한 연산군의 폭정언론을 막고 향락에 빠지다연산군은 신하들의 간언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사간원과 홍문관 등 언론 기관의 기능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동시에 대규모 사냥터를 조성하고 흥청이라는 기녀 집단을 두는 등 향락에 몰두했습니다.바닥난 민심과도한 세금과 부역, 여기에 잇단 사화로 인한 공포 정치까지 겹치면서 백성과 신하들 사이에서는 연..
무오사화로 사림파를 숙청한 뒤에도, 연산군의 통치는 점점 더 독단적이고 폭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1504년,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된 오래된 비극을 계기로 이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잔혹한 숙청을 단행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갑자사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폐비 윤씨, 잊혔던 비극2. 연산군, 진실을 알게 되다3. 1504년, 복수의 시작4. 훈구·사림 가리지 않은 피바람폐비 윤씨, 잊혔던 비극폐위된 왕비연산군의 생모 윤씨는 성종의 왕비였으나, 투기와 품행 문제로 폐위되어 사가로 쫓겨났습니다. 이후 그녀는 결국 사약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비밀에 부쳐진 사건연산군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생모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조정 안에서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