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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로 조광조와 신진 사림이 몰락한 뒤, 조선의 정치는 다시 훈구 세력이 주도하는 국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성격의 갈등, 즉 왕비 집안 간의 외척 다툼이 새로운 사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1545년 을사사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두 왕비, 두 외척
장경왕후와 대윤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는 세자(훗날 인종)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을 대윤이라 불렀습니다.
문정왕후와 소윤
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는 이후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았습니다. 그녀의 동생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은 소윤이라 불렸습니다.
대윤(大尹)·소윤(小尹) — 각각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입니다.
📌 핵심 정리
· 장경왕후 소생 인종 후견, 대윤(윤임)
· 문정왕후 소생 경원대군 후견, 소윤(윤원형)
· 두 외척 세력,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대립
인종의 짧은 재위
효심 깊었던 왕
1544년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세자였던 인종이 즉위했습니다. 그는 학문에 밝고 효심이 깊은 인물이었지만, 몸이 매우 허약했습니다.
불과 8개월 만의 죽음
인종은 즉위한 지 불과 8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안타까웠던 점은, 그의 이른 죽음이 곧바로 소윤 세력에게 절호의 기회를 열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인종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역사는 또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몰라요. 왕의 수명 하나가 이렇게 정치 지형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워요."
인종(仁宗) — 조선의 12대 왕으로, 즉위 8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핵심 정리
· 1544년 인종 즉위
· 학문에 밝았으나 병약
· 즉위 8개월 만에 사망, 소윤에 기회 제공
명종 즉위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어린 명종의 즉위
인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이복동생인 경원대군이 열두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바로 명종입니다.
문정왕후의 권력 장악
어린 명종을 대신해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그녀의 동생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 세력이 조정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 중종의 왕비로, 아들 명종의 즉위 후 수렴청정을 하며 소윤 세력의 권력을 뒷받침했습니다.
📌 핵심 정리
· 명종, 열두 살에 즉위
· 문정왕후, 수렴청정 시작
· 소윤(윤원형) 세력, 실권 장악
1545년, 대윤의 몰락
역모로 몰린 윤임
권력을 잡은 소윤은 대윤의 윤임 등이 역모를 꾸몄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대적인 숙청에 나섰습니다. 윤임을 비롯한 대윤 세력은 대거 처형되거나 유배되었습니다.
외척 정치의 심화
을사사화 이후 윤원형을 비롯한 소윤 세력은 오랫동안 조정을 좌우하며 외척 정치의 폐해를 심화시켰습니다. 이는 훗날 사림파가 다시 결집해 붕당을 형성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됩니다.
을사사화(乙巳士禍) — 1545년 대윤과 소윤의 외척 다툼 속에서 대윤 세력이 숙청된 사건입니다.
📌 핵심 정리
· 1545년 윤임 등 대윤 세력, 역모 명분으로 숙청
· 윤원형 등 소윤, 조정 실권 장악
· 외척 정치의 폐해 심화
중종의 두 왕비를 둘러싼 대윤과 소윤의 외척 다툼은, 인종의 이른 죽음과 명종의 즉위를 거치며 결국 1545년 을사사화로 폭발했습니다. 이로써 무오사화부터 이어진 4대 사화의 시대가 마무리되었지만, 외척 중심의 정치는 오랫동안 조선을 짓누르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러한 외척 정치의 그늘 속에서 사림파가 다시 성장해 붕당을 형성하는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 을사사화 타임라인
1544년 — 중종 사망, 인종 즉위
1545년 — 인종 사망(재위 8개월), 명종 즉위
1545년 — 문정왕후 수렴청정, 소윤 집권
1545년 — 을사사화, 윤임 등 대윤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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