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040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다 — 저고여 피살부터 귀주성 항전까지

한-스푼 2026. 8. 20. 22:40

몽골의 1차 침입과 귀주성 항전을 표현한 대표 썸네일

 

최충헌이 다진 최씨 무신정권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던 시기, 북쪽 초원에서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유라시아를 뒤흔드는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세력은 곧 고려의 운명에도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몽골과의 첫 충돌이 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몽골,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

칭기즈칸의 급부상

13세기 초, 칭기즈칸은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파죽지세로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순식간에 중앙아시아와 화북 일대까지 세력을 뻗친 몽골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를 뒤흔드는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거란 유민 토벌을 계기로 한 첫 접촉

1219년, 고려는 몽골군과 손잡고 고려 영토에 남아 있던 거란 유민 세력을 강동성에서 함께 토벌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려와 몽골은 처음으로 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 용어 정리
강동성 전투 — 1219년 고려와 몽골이 연합해 거란 유민 세력을 토벌한 전투로, 두 나라 최초의 접촉이었습니다.

📌 핵심 정리
· 칭기즈칸, 13세기 초 몽골 통일·급격한 팽창
· 1219년 강동성 전투에서 고려-몽골 연합
· 이를 계기로 양국 첫 외교 관계 성립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

과도한 공물 요구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몽골은 고려에 지나치게 과중한 공물을 요구하며 부담을 안겼습니다. 이는 고려 조정의 불만을 키우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몽골 사신의 죽음

1225년, 고려에서 돌아가던 몽골 사신 저고여가 국경 부근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진범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몽골은 이를 고려의 소행으로 단정하며 국교를 단절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살펴보면서 느낀 점은, 진상이 불분명한 사건 하나가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씁쓸하다는 것입니다.

🥄 스푼이 한마디
"저고여를 죽인 게 정말 고려였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아요. 하지만 몽골은 이 사건을 침공의 구실로 확실히 활용했답니다."
📖 용어 정리
저고여(著古與) — 고려에 파견되었던 몽골의 사신으로, 1225년 귀국길에 피살되었습니다.

📌 핵심 정리
· 몽골, 과중한 공물 요구로 고려와 갈등
·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 발생
· 몽골, 고려의 소행으로 단정·국교 단절

1231년, 살리타이의 침공

몽골군, 압록강을 건너다

저고여 피살을 명분 삼은 몽골은 1231년, 장수 살리타이를 앞세워 마침내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이는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지는 고려-몽골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빠르게 무너진 서북면 성들

몽골군의 진격은 매우 빨랐고, 서북면의 여러 성들이 잇달아 함락되었습니다. 세계를 정복하던 몽골군의 위력 앞에서 고려의 국경 방어선은 크게 흔들렸습니다.

📖 용어 정리
살리타이(撒禮塔) — 1231년 몽골의 1차 고려 침공을 이끈 장수입니다.

📌 핵심 정리
· 1231년 살리타이, 몽골군 이끌고 고려 침공
· 서북면 여러 성 잇달아 함락
· 이후 약 30년에 걸친 여몽전쟁의 시작

귀주성의 항전

박서, 귀주성을 지켜내다

거의 모든 성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귀주성을 지키던 박서는 몽골의 거센 공격을 끝내 막아냈습니다. 세계 각지를 정복해온 몽골군조차 함락시키지 못한 몇 안 되는 성이 바로 귀주성이었습니다.

고려, 새로운 항전의 방식을 고민하다

귀주성의 항전은 정면 승부로는 몽골을 완전히 막아내기 어렵다는 현실과, 동시에 굳게 지키면 버텨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이후 최씨 정권이 강화도 천도라는 새로운 항전 전략을 택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 용어 정리
귀주성(龜州城) —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당시 박서가 끝까지 지켜낸 성으로, 몽골군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 핵심 정리
· 박서, 귀주성에서 몽골군의 공격을 방어
· 몽골군도 끝내 함락시키지 못함
· 이후 고려의 항전 전략 수립에 영향

1219년 강동성에서의 협력으로 시작된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을 거치며 완전히 뒤틀리고 말았습니다. 1231년 시작된 몽골의 침공 앞에 대부분의 성이 무너졌지만, 박서가 지켜낸 귀주성은 고려에 여전히 저항할 힘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이후 강화도 천도와 삼별초 항쟁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여몽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최우의 강화도 천도 결정을 다뤄보겠습니다.

📌 몽골 침입 시작 타임라인

1219년 — 강동성 전투, 고려-몽골 최초 접촉

1225년 — 몽골 사신 저고여 피살, 국교 단절

1231년 — 살리타이, 몽골군 이끌고 1차 침입

1231년 — 박서, 귀주성 항전 성공

몽골 1차 침입 과정을 레시피 형식으로 요약한 인포그래픽 이미지

📘 시리즈 목록

#037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038 무신정변, 문신의 시대가 저물다

#039 최충헌과 무신정권의 안정

▶ #040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다 — 현재 글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과 구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