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선왕이 이룩한 해동성국 발해는 이후로도 한동안 번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9세기 후반, 발해는 다시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에 휩싸이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균열은 결국 새롭게 떠오른 거란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번 편에서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가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 그 멸망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흔들리는 해동성국, 거란의 성장
대인선, 위태로운 시기에 왕위에 오르다
선왕 이후 발해는 대이진, 대건황, 대현석을 거치며 한동안 안정을 유지했지만, 9세기 말에 접어들며 다시 국력이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은 907년 무렵 왕위에 올랐는데, 이 시기 발해는 이미 북방에서 급격히 세력을 키우던 거란과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야율아보기, 거란을 통일하다
10세기 초, 야율아보기는 흩어져 있던 거란 부족을 통일하고 916년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후 그는 서쪽으로 알타이산맥에 이르는 대원정을 성공시키며 세력을 크게 넓혔습니다. 대인선은 후량, 신라, 여진 등과 외교 관계를 맺어 거란의 팽창에 맞서려 했지만, 발해는 점차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갔습니다.
"발해가 갑자기 약해진 게 아니라, 거란이라는 상대가 그만큼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던 거예요. 서방 원정까지 성공시킨 야율아보기의 다음 목표가 바로 발해였답니다."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 거란족을 통일하고 요나라를 세운 초대 황제(재위 916~926)입니다.
📌 핵심 정리
· 대인선, 907년 무렵 발해의 마지막 왕으로 즉위
· 916년 야율아보기, 거란을 통일하고 황제 칭호 사용
· 대인선은 후량·신라·여진과 외교로 대응했으나 고립 심화
924~925년, 거란과의 공방전
924년, 발해의 선제공격
924년, 발해는 오히려 먼저 거란의 요주를 공격해 자사를 죽이고 물자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에 야율아보기가 같은 해 여름 반격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물러났습니다. 이 공방은 발해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만큼 약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925년 12월, 야율아보기의 총공세
925년 9월, 서방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야율아보기는 '두 가지 과업 중 하나는 이미 이루었으니, 이제 대대로 원수인 발해를 정벌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야율아보기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발해를 향한 총공세에 나섰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발해 정벌이 야율아보기 개인에게 오랫동안 벼르던 숙원 사업이었다는 점입니다.
요주(遼州) — 발해가 924년 선제공격한 거란의 지역입니다.
📌 핵심 정리
· 924년 발해가 거란의 요주를 먼저 공격
· 924년 여름 거란의 반격은 성과 없이 무산
· 925년 12월 야율아보기, 발해 정벌을 위한 총공세 개시
926년 1월, 부여성 함락과 상경 포위
부여성, 사흘 만에 무너지다
거란군은 발해의 서쪽 관문인 부여부를 향해 빠르게 진격했습니다. 926년 1월 3일, 부여성은 거란의 공격을 받은 지 단 사흘 만에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발해의 방어 체계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상경용천부 포위와 대인선의 항복
부여성을 점령한 거란군은 곧바로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 즉 홀한성으로 향해 1월 9일 성을 포위했습니다. 발해의 노상이 이끄는 군대가 맞섰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1월 12일 대인선은 항복을 요청했습니다. 1월 14일 야율아보기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698년 대조영이 세운 이래 228년간 이어진 발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부여성 함락부터 수도 항복까지 걸린 시간이 채 2주가 안 돼요. 그만큼 발해 내부가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홀한성(忽汗城) —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의 왕성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 핵심 정리
· 926년 1월 3일 부여성 함락
· 1월 9일 거란군, 상경용천부(홀한성) 포위
· 1월 12일 대인선 항복 요청, 1월 14일 발해 멸망
발해 멸망 이후, 유민들의 저항과 이주
동란국과 후발해, 부흥의 시도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은 옛 발해 땅에 동란국을 세우고 야율배를 왕으로 삼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발해 유민들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대인선의 동생은 926년 후발해를 세우며 저항을 이어갔고, 이후에도 정안국 등 발해 부흥을 향한 움직임이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고려로 향한 발해 유민들
한편 많은 발해 유민들은 927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로 넘어갔습니다. 그중에는 발해 왕자 대광현을 비롯한 왕실과 지배층은 물론, 평민들까지 폭넓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고구려 계승 의식을 내세우던 고려 태조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훈요 10조에서 경계할 나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동란국(東丹國) — 발해 멸망 직후 거란이 옛 발해 땅에 세운 나라로, 야율배가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 핵심 정리
· 거란, 옛 발해 땅에 동란국 설치
· 대인선의 동생, 926년 후발해 건국해 저항
· 927년 이후 대광현 등 유민들이 고려로 대거 이주
698년 대조영의 건국부터 선왕의 해동성국 시절을 거쳐 926년 멸망까지, 발해는 228년에 걸쳐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강국으로 존재했습니다. 비록 나라는 무너졌지만, 그 유민들은 고려로 넘어가 새로운 나라의 일원이 되었고 발해의 역사와 정신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통일신라 하대의 혼란과 후삼국시대의 시작을 다뤄보겠습니다.
📌 발해 멸망 타임라인
907년경 — 대인선, 발해 마지막 왕으로 즉위
916년 — 야율아보기, 거란 통일 및 황제 칭호
924년 — 발해의 요주 선제공격, 거란의 반격 무산
925년 12월 — 야율아보기, 발해 정벌 총공세 개시
926년 1월 3일 — 부여성 함락
926년 1월 9일 — 상경용천부(홀한성) 포위
926년 1월 12~14일 — 대인선 항복, 발해 멸망
927년 이후 — 대광현 등 유민, 고려로 이주
📘 시리즈 목록
▶ #019 한눈에 마스터하는 삼국시대 — 건국부터 삼국통일까지 연대기 총정리
▶ #020 통일신라의 체제 정비 — 신문왕, 왕권 강화와 개혁을 이루다
▶ #021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 천문령 전투부터 발해군왕 책봉까지
▶ #022 무왕과 문왕, 발해를 대국으로 키우다 — 등주 공격부터 발해국왕 책봉까지
▶ #023 선왕, 발해를 해동성국으로 이끌다 — 5경 15부 62주 완성과 영토 확장
▶ #024 발해의 멸망, 해동성국은 왜 무너졌을까 — 현재 글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과 구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