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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를 건국하다 — 천문령 전투부터 발해군왕 책봉까지

한-스푼 2026. 7. 31. 02:30

676년 신라의 삼국통일과 685년 신문왕의 체제 정비로 한반도 남쪽은 통일신라의 틀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북쪽 만주 땅에서는 또 다른 나라가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옛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말갈족과 손잡고 세운 나라, 바로 발해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696년 영주 탈출부터 713년 발해군왕 책봉까지,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는 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 영주를 탈출하다

이진충의 난과 요서 지역의 혼란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많은 고구려 유민을 요서 지방의 영주(오늘날 랴오닝성 차오양 일대)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곳에는 고구려 유민뿐 아니라 거란족, 말갈족 등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696년 5월, 거란의 이진충과 손만영이 당의 가혹한 통치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란으로 영주 일대의 당 통치 체계가 순식간에 흔들렸고, 그 혼란은 곧 새로운 나라가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 무리를 이끌다

이 틈을 타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걸걸중상(대조영의 아버지)과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는 측천무후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규합해 영주를 탈출했습니다.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옛 고구려의 땅이었던 동쪽으로 돌아가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하나의 무리로 함께 움직였다는 점은, 이후 세워질 나라가 처음부터 다민족 연합의 성격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스푼이 한마디
"고구려가 망했다고 고구려 사람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어요. 30년 뒤, 그 후손들이 새로운 나라의 주춧돌을 놓고 있었답니다."
📖 용어 정리
영주(營州) — 오늘날 중국 랴오닝성 차오양 일대. 당이 고구려·거란·말갈 유민을 강제 이주시켜 관리하던 지역입니다.

📌 핵심 정리
· 696년 거란 이진충의 난으로 영주 지역 혼란
· 걸걸중상(고구려 유민)+걸사비우(말갈 추장) 무리를 이끌고 영주 탈출
· 목표는 옛 고구려 땅으로의 귀환

천문령 전투, 대조영이 살아남다

당군 이해고의 추격

당은 영주를 탈출한 무리를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당 조정은 거란 출신 장수 이해고에게 추격을 명령했습니다. 당군은 빠른 속도로 탈출 무리를 뒤쫓았고, 결국 천문령(오늘날 지린성 일대로 추정되는 고개)에서 두 세력이 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말갈 추장 걸사비우가 전사했고, 걸걸중상 역시 이 시기를 전후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조영,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지도자를 잃은 위기 속에서 대조영이 남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 무리를 수습해 지휘권을 이어받았습니다. 이후 대조영이 이해고의 군대를 크게 격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사료마다 전투의 최종 승패를 다르게 전하고 있어 오늘날에도 해석이 엇갈립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이 전투 이후 대조영이 무리를 이끌고 무사히 동쪽으로 이동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지도자 두 명을 동시에 잃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무리가 흩어지지 않고 대조영을 중심으로 재결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 스푼이 한마디
"위기의 순간에 누가 무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느냐, 그게 다음 나라의 운명을 갈랐어요."
📖 용어 정리
천문령(天門嶺) — 영주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던 대조영 무리와 당 추격군이 격돌한 고개.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 지린성 일대로 추정됩니다.

📌 핵심 정리
· 당 장수 이해고가 탈출 무리를 추격
· 천문령 전투에서 걸사비우 전사, 걸걸중상도 사망
· 대조영이 지휘권을 이어받아 무리를 수습

동모산에서 세운 나라, 진국

동모산의 위치와 지형

영주에서 무려 2,000리(『구당서』·『신당서』 기록)를 이동한 대조영 무리는 마침내 동모산(오늘날 지린성 둔화시의 성산자산성으로 비정)에 이르렀습니다. 동모산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갖추고 있어, 당의 추가 공격으로부터 새 나라를 지켜낼 근거지로 적합했습니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의 연합국가

698년, 대조영은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라 칭했습니다. 이때의 국호는 '진국(振國 또는 震國)'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처음부터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참여한 연합국가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지배층에는 고구려 유민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말갈족 역시 건국의 핵심 주체로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훗날 발해가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면서도, 다양한 구성원을 아우르는 나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 스푼이 한마디
"진국은 처음부터 여러 민족이 함께 세운 나라였어요. 그래서 발해는 늘 '고구려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았답니다."
📖 용어 정리
진국(振國/震國) —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세운 나라의 처음 국호. 713년 이후 '발해'로 바뀝니다.

📌 핵심 정리
· 698년 동모산에서 건국, 대조영이 왕위에 오름
· 초기 국호는 '진국'
·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의 연합국가로 출발

대조영, 발해군왕에 책봉되다

당과의 관계 정상화

진국이 세력을 넓혀가자 당 조정도 더 이상 무력으로 억누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당은 회유책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713년, 당 현종은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책봉했습니다. 이는 당이 사실상 대조영이 세운 나라의 독립적 지위를 인정한 조치였습니다.

국호 '발해'와 고왕 대조영

발해군왕 책봉을 계기로 대조영은 국호를 '진국'에서 '발해(渤海)'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조영 사후에는 '고왕(高王)'이라는 시호가 붙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발해는 이후 통일신라와 나란히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르는 남북국시대를 열게 됩니다.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라 칭하기도 했는데, 이는 발해가 끝까지 고구려 계승 의식을 놓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스푼이 한마디
"발해군왕이라는 책봉은 사실 당의 자존심 지키기였어요. 이미 독립한 나라를 뒤늦게 인정해준 셈이었죠."
📖 용어 정리
남북국시대 — 통일신라(남)와 발해(북)가 공존하던 시대를 가리키는 역사 용어입니다.

📌 핵심 정리
· 713년 당 현종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
· 국호를 진국에서 발해로 변경
· 대조영 사후 시호는 고왕, 이후 남북국시대 성립

📌 발해 건국 타임라인

668년 — 고구려 멸망, 유민들이 당의 영주 지역으로 강제 이주

696년 — 거란 이진충의 난, 걸걸중상·걸사비우가 무리를 이끌고 영주 탈출

696년 — 천문령 전투, 걸사비우 전사·걸걸중상 사망, 대조영이 지휘권 승계

698년 — 대조영, 동모산에서 진국 건국

713년 — 당 현종,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 국호를 발해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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