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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와 황산벌 전투, 그리고 660년 백제의 멸망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백제에 이어 삼국 중 두 번째로 무너지게 되는 고구려의 멸망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연개소문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 뒤, 고구려는 내부 분열이라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균열이 나라를 더 빨리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연개소문의 죽음과 아들들의 내분
강압적인 통치로 고구려를 이끌던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자, 그동안 억눌려 있던 내부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666년, 남생과 동생들의 권력다툼
666년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맏아들 남생이 아버지의 지위인 막리지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남생이 지방을 순행하는 사이, 동생 남건과 남산이 병력을 일으켜 형을 몰아내고 말았습니다.
남생의 당 투항, 연정토의 신라 투항
하루아침에 쫓겨난 남생은 666년 6월 국내성을 비롯한 6개 성과 주변 3개 성의 백성을 이끌고 당나라에 투항했습니다. 당은 그해 9월 남생에게 요동도독 벼슬을 내렸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마저 함경남도와 강원도 북부의 12개 성을 들어 신라에 투항했습니다. 고구려 최고 지도부 내부에서 벌어진 이 연쇄적인 분열은 나당연합군에게 결정적인 침공 명분과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막리지 — 고구려의 최고 관직으로 연개소문 이후 그 아들들이 이어받은 지위.
666년 연개소문 사후 아들 남생이 동생들에게 축출되어 당에 투항했고, 연개소문의 동생 연정토도 신라에 투항하며 고구려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당연합군, 고구려를 침공하다
고구려 지도부의 내분을 확인한 당은 곧바로 대규모 원정을 준비했습니다.
이적의 원정과 667년 신성 함락
666년 12월, 당 고종은 장군 이적을 요동도행군대총관으로 삼아 고구려 원정을 본격화했습니다. 667년, 당군은 고구려 북서쪽의 요새인 신성을 함락시켰고, 주변 16개 성이 잇달아 당에 투항했습니다.
평양성을 향한 진격
신성 함락을 시작으로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의 여러 성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수도 평양성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이미 지도부가 분열되고 주요 거점을 잃은 고구려는 이 압박을 막아낼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신성 — 지금의 중국 랴오닝성 일대에 있던 고구려 북서쪽의 요충지.
666년 이적을 필두로 원정에 나선 나당연합군은 667년 신성을 함락시키고 평양성을 향해 진격했습니다.
668년, 평양성 함락과 보장왕의 최후
결국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 앞까지 다다랐고, 마지막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한 달의 포위와 승려 신성의 내응
668년, 나당연합군은 평양성을 한 달 넘게 포위했습니다. 성 안에서는 연남건이 승려 신성에게 군사 지휘권을 맡겼는데, 신성은 몰래 사람을 보내 당의 이적에게 내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결국 신성이 성문을 열자 나당연합군이 성 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보장왕의 항복과 안동도호부 설치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마지막 왕 보장왕과 연남산·연남건 등 고구려 최고위층은 포로가 되어 당으로 끌려갔습니다. 당은 옛 고구려 땅을 다스리기 위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고, 이로써 700년 가까이 이어진 고구려는 668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평양성을 무너뜨린 건 외부의 대군이 아니라 성 안 내응자의 배신이었어요. 연개소문 사후 형제들의 다툼부터 시작된 균열이 끝내 성문을 여는 데까지 이어진 셈이죠."
안동도호부 — 고구려 멸망 후 당이 옛 고구려 땅을 다스리기 위해 평양에 설치한 통치 기구.
668년 승려 신성의 내응으로 평양성이 함락되며 보장왕이 항복했고, 당은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했습니다.
고구려부흥운동과 유민들의 저항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도 유민들은 나라를 되살리기 위한 저항을 이어갔습니다.
검모잠과 안승, 그리고 보덕국
검모잠은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며 고구려부흥운동을 이끌었고, 신라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670년 신라의 설오유와 고구려 출신 장수 고연무는 정병 1만 명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당군과 맞서기도 했습니다. 신라 문무왕은 670년 안승을 정식으로 고구려왕에 책봉하고 금마저(지금의 전북 익산)에 자리 잡게 했는데, 이렇게 세워진 나라가 보덕국입니다.
671년 안시성 함락, 부흥운동의 종식
그러나 671년 7월, 당의 장군 고간이 안시성에서 고구려 부흥군을 격파하면서 옛 땅에서의 부흥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안승은 검모잠을 살해했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흥운동을 이끄는 방향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고구려부흥운동은 옛 영토 회복이 아니라, 신라 안에서 보덕국이라는 자치 세력으로 남는 형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보덕국 — 신라가 안승을 왕으로 책봉해 금마저에 세우게 한 고구려 유민들의 자치 국가.
검모잠·안승의 고구려부흥운동은 670년 신라의 지원으로 한때 기세를 올렸지만, 671년 안시성 함락 이후 보덕국이라는 자치 세력으로 남는 데 그쳤습니다.

마무리
666년 연개소문 사후 아들들의 권력다툼과 잇따른 투항, 그리고 668년 평양성 함락까지, 고구려는 외부의 침공보다 내부의 균열로 먼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검모잠과 안승의 부흥운동도 671년 안시성 함락 이후 보덕국이라는 형태로만 명맥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제 삼국 중 남은 것은 신라뿐이었지만, 곧 신라는 동맹국이었던 당과도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나당전쟁과 삼국통일의 완성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 고구려 멸망 타임라인
666년 — 연개소문 사망, 남생 축출·당 투항, 연정토 신라 투항
667년 — 이적의 원정, 신성 함락
668년 — 평양성 함락, 보장왕 항복, 안동도호부 설치
670년 — 검모잠, 안승을 왕으로 추대·부흥운동, 안승 고구려왕 책봉·보덕국 성립
671년 — 안시성 함락, 부흥운동 사실상 종식
📘 시리즈 목록
▶ #012 광개토대왕, 백제·신라·요동을 정복하다 - 영락의 시대를 열다
▶ #013 삼국의 한강 쟁탈전 — 장수왕의 남진부터 관산성 전투까지
▶ #014 백제의 전성기 — 근초고왕의 정복부터 침류왕의 불교 공인까지
▶ #015 신라의 전성기 — 진흥왕, 대가야 정복부터 화랑도까지
▶ #016 백제의 멸망 — 황산벌 전투부터 백강 전투까지
▶ #017 고구려의 멸망 — 연개소문 사후 내분부터 평양성 함락까지 — 현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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