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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 삼별초의 항쟁 — 진도에서 제주까지, 끝나지 않은 저항

한-스푼 2026. 8. 27. 22:45

삼별초는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발해 독자적인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강화도에서 진도와 제주로 이동한 과정을 따라가며 항쟁의 배경과 전개, 끝내 진압되기까지의 흐름을 알아봅니다.

삼별초의 항쟁을 표현한 대표 썸네일

1270년 개경 환도는 무신정권 시대의 종식을 알렸지만, 모든 이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몽골과 맞서 싸워온 삼별초는 항복이나 다름없는 이 결정에 반발하며, 독자적인 항쟁의 길로 나섭니다. 이번 편에서는 진도와 제주로 이어진 삼별초의 항쟁을 살펴보겠습니다.

삼별초, 몽골과 맞선 특수부대

최우가 만든 정예 부대

삼별초는 원래 최우가 도적을 막기 위해 조직한 야별초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확대 개편되며, 대몽 항쟁의 최전선을 지키는 정예 부대로 성장했습니다.

무신정권과 함께한 30여 년

삼별초는 최씨 정권의 사병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실제로 몽골과의 여러 전투에서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습니다. 이들에게 개경 환도는 곧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사건이었습니다.

📖 용어 정리
삼별초(三別抄) —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구성된, 고려 무신정권 시기의 정예 군사 조직입니다.

📌 핵심 정리
· 최우의 야별초에서 출발해 삼별초로 확대
· 대몽 항쟁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
· 개경 환도가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 됨

배중손, 봉기를 일으키다

해산 명령에 대한 반발

개경 환도를 결정한 원종은 몽골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삼별초의 해산을 명령했습니다. 이는 곧 삼별초 자신들이 몽골에 항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새 왕을 세우고 항전을 선언하다

1270년, 배중손은 해산을 거부하고 왕족 승화후 왕온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며 독자적인 정부를 세웠습니다. 제가 이 결정을 보면서 놀랐던 점은, 이들이 단순한 반란군이 아니라 스스로 정통성을 갖춘 정부를 자처했다는 사실입니다.

🥄 스푼이 한마디
"단순히 명령에 불복한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왕을 세우고 정부를 자처했다는 게 놀라워요. 그만큼 개경 환도를 항복이라 여긴 저항 의지가 강했던 거죠."
📖 용어 정리
배중손(裵仲孫) — 삼별초 항쟁을 이끈 초대 지도자로, 진도에서 항전을 지휘했습니다.

📌 핵심 정리
· 원종, 삼별초 해산 명령
· 1270년 배중손, 해산 거부·봉기
· 승화후 왕온을 새 왕으로 추대

진도에서 제주로

용장성, 새로운 거점

삼별초는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근거지를 옮기고 용장성을 쌓아 항쟁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은 남해안 일대까지 세력을 뻗치며 한동안 위세를 떨쳤습니다.

진도 함락과 김통정의 제주 이동

1271년,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공격으로 배중손이 전사하고 진도가 함락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삼별초는 김통정의 지휘 아래 다시 제주도로 옮겨가 항파두리성을 쌓고 항쟁을 이어갔습니다.

📖 용어 정리
항파두리성 — 삼별초가 제주도에 쌓은 마지막 항전 거점입니다.

📌 핵심 정리
· 진도에 용장성 쌓고 남해안까지 세력 확장
· 1271년 진도 함락, 배중손 전사
· 김통정, 제주도로 이동해 항쟁 지속

1273년, 항쟁의 끝

제주도 함락

1273년,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은 마지막으로 남은 제주도의 삼별초를 공격했습니다. 항파두리성이 함락된 뒤 김통정은 일부 부하와 산중으로 피신했으며, 이후 자결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전합니다. 1270년부터 이어진 약 3년간의 삼별초 항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항쟁이 남긴 의미

삼별초의 항쟁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몽골이라는 대제국에 맞서 끝까지 저항하려 한 고려인들의 자주 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

📖 용어 정리
삼별초의 항쟁 — 1270년부터 1273년까지 진도와 제주도를 거치며 이어진 삼별초의 대몽·대고려 저항입니다.

📌 핵심 정리
· 1273년 항파두리성 함락, 김통정 자결
· 약 3년에 걸친 삼별초 항쟁 종결
· 자주적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평가

배중손의 진도 항쟁에서 김통정의 제주도 항전까지, 삼별초는 약 3년간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맞서 싸웠지만 끝내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1231년 몽골의 첫 침입 이후 이어진 항전의 마지막 국면이 끝났습니다. 다만 고려 조정은 이미 1259년 몽골과 강화를 맺었고 1270년 개경으로 돌아갔으므로, 모든 고려군이 1273년까지 같은 편에서 싸운 것은 아닙니다. 다음 편에서는 부마국이 된 고려와 원 간섭기의 모습을 다뤄보겠습니다.

📌 삼별초 항쟁 타임라인

1270년 — 배중손, 삼별초 봉기·진도 이동

1271년 — 진도 함락, 배중손 전사

1271년 — 김통정, 제주도 이동·항파두리성 축조

1273년 — 제주도 함락, 삼별초 항쟁 종결

삼별초 항쟁 과정을 레시피 형식으로 요약한 인포그래픽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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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삼별초 항쟁의 두 가지 성격

삼별초는 몽골과 싸운 군사 조직인 동시에 무신정권의 무력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1270년의 봉기는 대몽 저항이면서, 해산을 명령한 고려 국왕과의 대립이기도 했습니다. 왕온을 옹립한 일은 별도의 정치적 정통성을 내세웠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를 자주 의지만으로 설명하거나 단순한 군사 반란으로만 설명하면 당시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놓치기 쉽습니다.

배중손의 최후는 진도 함락 때 전사한 것으로 보지만 구체적인 경위가 모두 확인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통정 역시 성이 무너지는 순간 바로 자결한 것으로 단정하기보다, 패전 뒤 피신과 죽음의 순서를 구분해 읽는 것이 정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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