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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강화도 천도는 몽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살리타이는 다시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고, 이번에는 개경을 넘어 더 깊숙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름조차 낯선 작은 토성 처인성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번 편에서는 몽골의 2차 침입과 처인성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몽골의 2차 침입
천도를 꾸짖은 살리타이
1232년 8월, 살리타이는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고 몽골이 세운 다루가치를 살해한 것을 문제 삼으며 다시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서경의 반적과 손을 잡다
살리타이는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투항한 홍복원 세력과 합세해 서경을 손쉽게 함락시켰습니다. 내부의 배신자가 침략군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픈 대목입니다.
홍복원(洪福源) — 몽골에 투항해 길잡이 역할을 한 고려 출신 반역자입니다.
📌 핵심 정리
· 1232년 8월 살리타이, 2차 침입 감행
· 다루가치 살해와 천도를 침공 명분으로 삼음
· 홍복원과 합세해 서경 함락
남하하는 살리타이
개경을 지나 한양산성까지
몽골군은 개경을 거쳐 한양산성(지금의 북한산성)을 함락시키며 거침없이 남하했습니다. 강화도의 조정은 바다 건너에서 이 소식을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주성에서 막히다
광주(지금의 남한산성)에서는 고려군이 몽골의 공격을 잘 막아내며 선전했습니다. 공략에 실패한 몽골군은 방향을 돌려 남쪽으로 계속 진격했고, 그 끝에 처인부곡의 작은 성, 처인성에 이르게 됩니다.
처인부곡(處仁部曲) — 지금의 경기 용인 일대에 있던 특수 행정구역으로, 처인성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 핵심 정리
· 몽골군, 개경·한양산성 함락하며 남하
· 광주성에서는 고려군이 방어 성공
· 몽골군, 방향을 돌려 처인성으로 진격
처인성의 승려 김윤후
피난민들의 작은 토성
처인성은 정규 군대가 아니라, 전란을 피해 모여든 처인부곡 주민들이 지키던 작은 흙 성이었습니다. 백현원의 승려 김윤후도 이곳으로 피신해 있었습니다.
주민들을 이끈 승장
1232년 12월 16일,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이 처인성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정규군도 없는 상황에서 김윤후는 주민들에게 무기를 나눠주고 지휘를 맡아, 성 밖에 저격수까지 배치하며 결전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승려 한 명이 훈련받지 않은 부곡민들을 이끌고 세계 최강의 군대에 맞섰다는 사실입니다.
"정규군도 아니고, 차별받던 부곡민들이 스스로 무기를 들고 나섰다는 게 정말 놀라워요. 이런 게 진짜 민초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김윤후(金允侯) — 처인성 전투를 이끈 승려로, 살리타이를 사살해 몽골군을 철수시킨 인물입니다.
📌 핵심 정리
· 처인성, 부곡민들이 자체적으로 방어한 토성
· 김윤후, 승려 신분으로 주민들을 지휘
· 저격수 배치 등 철저히 결전 준비
화살 한 발이 바꾼 전쟁
살리타이의 죽음
전투가 벌어지자 처인성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맞섰고, 그 과정에서 김윤후가 쏜 화살이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를 명중시켰습니다. 총사령관을 잃은 몽골군은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몽골군의 철수
지휘관을 잃은 몽골군은 부장 철가의 인솔로 곧 북쪽으로 철수했습니다. 작은 토성 하나에서 벌어진 전투가 대규모 침공군 전체를 물러나게 만든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조정은 김윤후에게 파격적으로 상장군의 벼슬을 내리려 했으나, 그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사양했다고 전해집니다.
처인성 전투 — 1232년 12월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이를 사살하며 몽골군을 철수시킨 전투입니다.
📌 핵심 정리
· 1232년 12월 16일 김윤후, 살리타이 사살
· 지휘관을 잃은 몽골군 전의 상실·철수
· 고려, 장기 항전의 시간을 벌게 됨
정규군도 없이 부곡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처인성은, 몽골 제국의 총사령관 살리타이의 목숨을 앗아가며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몽골과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시작된 팔만대장경 조판 사업을 다뤄보겠습니다.
📌 처인성 전투 타임라인
1232년 8월 — 살리타이, 몽골 2차 침입 감행
1232년 — 서경 함락, 한양산성 함락
1232년 — 광주성, 몽골군 방어 성공
1232년 12월 16일 — 처인성 전투, 살리타이 사살·몽골군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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