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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거란의 2차 침입과 강조의 정변 — 개경 함락부터 양규의 반격까지

한-스푼 2026. 8. 12. 09:53

거란 2차 침입과 현종의 피난을 표현한 대표 썸네일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한동안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009년 고려 조정에서 벌어진 정변 하나가 다시 전쟁의 불씨를 지피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이 다시 고려를 침공한 2차 침입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009년, 강조의 정변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사사로이 관계를 맺고, 자신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는 왕실의 정통성을 크게 흔드는 일이었고, 조정 안팎에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강조, 군사를 일으켜 현종을 옹립하다

서북면도순검사 강조는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들어와 김치양 세력을 숙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목종까지 폐위시킨 뒤 살해하고, 대량원군 왕순을 새 왕, 즉 현종으로 옹립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부정을 바로잡겠다며 나선 인물이 결국 왕을 시해하는 더 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입니다.

🥄 스푼이 한마디
"정변으로 왕이 된 현종은 시작부터 정통성 논란에 시달려야 했어요. 그리고 이 사건이 이웃 나라 거란에게 좋은 침공 명분을 준 셈이 됐죠."
📖 용어 정리
강조의 정변 — 1009년 강조가 목종을 폐위·시해하고 현종을 옹립한 사건입니다.

📌 핵심 정리
· 천추태후·김치양의 전횡으로 왕실 정통성 위기
· 1009년 강조, 김치양 숙청 후 목종 폐위·시해
· 대량원군(현종) 옹립

1010년, 거란의 재침공

정변을 구실로 삼은 거란

거란의 성종은 강조의 정변을 '신하가 왕을 시해한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삼아, 1010년 11월 40만 대군이라 칭하며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고려는 강조를 행영도통사로 삼아 30만 병력으로 맞섰습니다.

흥화진 전투와 강조의 패배

양규가 지키던 흥화진은 거란의 거센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냈지만, 통주에서 거란군과 맞붙은 강조는 초반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방심 끝에 크게 패배해 거란군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 용어 정리
흥화진(興化鎭) — 강동 6주 중 하나로, 거란 2차 침입 초반 양규가 굳게 지켜낸 요충지입니다.

📌 핵심 정리
· 1010년 거란 성종,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공
· 양규, 흥화진에서 거란군 방어 성공
· 강조는 통주 전투에서 패배·전사

개경 함락과 현종의 피난

수도가 뚫리다

강조가 무너지자 거란군은 곽주·안주 등을 잇달아 함락시키며 남하했고, 결국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함락시켰습니다. 조정에서는 다시 항복론이 거세게 일었지만, 강감찬의 반대로 현종은 항복 대신 남쪽 나주까지 피난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하공진의 화친 요청

개경까지 내주는 위기 속에서도 고려는 하공진을 보내 화친을 청했고, 현종이 직접 거란에 입조하겠다는 조건으로 거란은 이를 받아들여 철군을 시작했습니다.

🥄 스푼이 한마디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나주까지 피난 갔다는 건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였어요. 그런데도 항복 대신 끝까지 버틴 결정이 다음 반전의 발판이 됐답니다."
📖 용어 정리
하공진 — 개경 함락 위기 속에서 거란에 화친을 요청하러 간 고려의 관료입니다.

📌 핵심 정리
· 거란군, 개경까지 함락
· 현종, 항복 대신 나주로 피난
· 하공진의 화친 요청으로 거란 철군 결정

양규의 반격과 거란의 철수

철수하는 거란군을 노리다

거란군은 개경 함락에만 서둘러 흥화진·구주·통주·서경 등 배후의 성들을 그대로 두고 내려온 상태였습니다. 이 때문에 병참선이 위태로웠고, 철수 길에 오른 거란군을 양규와 김숙흥이 이끄는 고려군이 구주 일대에서 거세게 공격했습니다.

양규와 김숙흥의 전사

양규와 김숙흥은 이 전투에서 거란군에 많은 피해를 입혔지만, 끝내 자신들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활약은 비록 목숨을 잃는 결과로 끝났지만, 거란군에게 큰 타격을 남기며 다음 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 용어 정리
구주(龜州) — 지금의 평북 구성 일대로, 훗날 3차 침입의 귀주대첩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 핵심 정리
· 거란군, 배후 성들을 남겨둔 채 개경만 함락
· 양규·김숙흥, 철수하는 거란군을 구주에서 공격
· 두 장수 모두 전사, 거란군에 큰 타격

1009년 강조의 정변으로 시작된 위기는 1010년 거란의 침공과 개경 함락, 현종의 나주 피난으로 이어지며 고려를 벼랑 끝까지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양규와 김숙흥의 마지막 반격은 거란에 뼈아픈 타격을 남겼고, 이는 곧 이어질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다뤄보겠습니다.

📌 거란 2차 침입 타임라인

1009년 — 강조의 정변, 목종 폐위·시해, 현종 즉위

1010년 11월 — 거란 성종, 대군 이끌고 침공

1010년 — 통주 전투, 강조 패배·전사

1010년 — 개경 함락, 현종 나주 피난

1011년 — 양규·김숙흥, 구주에서 철군 거란군 공격 후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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