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목숨을 잃으면서,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마지막 저항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신진사대부 앞을 가로막을 세력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392년 7월,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 새롭게 문을 여는 그 순간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지다
정몽주 사후의 조정
정몽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 조정 안에서 이성계 세력에 맞설 만한 정치적 구심점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남은 신하들 대부분은 이미 이성계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빨라진 왕조 교체의 시계
더 이상 걸림돌이 없어지자,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은 새 왕조 건국을 향한 절차를 빠르게 밟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양왕(恭讓王) —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이성계 세력에 의해 옹립되었다가 곧 폐위되었습니다.
📌 핵심 정리
· 정몽주 사후 이성계 세력에 맞설 구심점 소멸
· 조정 대부분 이성계 세력으로 재편
· 왕조 교체 절차가 빠르게 진행
공양왕의 폐위
허수아비 왕, 공양왕
창왕이 폐위된 뒤 왕위에 올랐던 공양왕은 이성계 세력의 뜻대로 움직이는 명목상의 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실질적인 권력은 이미 이성계에게 있었습니다.
1392년 7월, 왕위에서 물러나다
1392년 7월, 공양왕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왕의 자진 사임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왕조 교체를 위한 마지막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창왕(昌王) — 우왕의 아들로, 조민수에 의해 옹립되었다가 곧 폐위되었습니다.
📌 핵심 정리
· 공양왕, 이성계 세력이 옹립한 명목상의 왕
· 1392년 7월 공양왕 폐위
· 형식적 사임, 실질적으로는 왕조 교체 절차
신하들의 추대
배극렴 등의 추대
공양왕이 물러나자, 배극렴을 비롯한 신하들은 이성계에게 새로운 왕위에 오를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918년 왕건이 궁예를 대신해 추대받았던 장면과도 흡사한 모습이었습니다.
형식적인 사양
이성계는 처음에는 이를 사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신하들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새 왕조를 여는 절차조차 겸양이라는 유교적 명분을 정성껏 갖췄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다 짜여진 각본이었을 텐데도, 사양하고 다시 추대받는 형식을 꼭 갖췄어요. 힘만으로 오른 왕이 아니라, 명분까지 갖춘 왕이 되고 싶었던 거겠죠."
배극렴(裵克廉) — 이성계를 새 왕으로 추대하는 데 앞장선 신하입니다.
📌 핵심 정리
· 배극렴 등, 이성계에게 즉위 요청
· 이성계, 형식적으로 사양 후 수락
· 겸양의 절차를 통해 정통성 명분 확보
새 왕조, 조선의 탄생
1392년 7월, 이성계 즉위
1392년 7월 17일, 이성계는 마침내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918년 왕건이 세운 이래 474년간 이어져 온 고려 왕조가 이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아직 남은 과제들
즉위 초기 이성계는 국호를 잠시 그대로 유지하며 후속 절차를 준비했습니다.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하고 새 수도로 천도하는 일은 조금 뒤의 과제로 남겨두었습니다.
조선(朝鮮) — 이성계가 세운 새 왕조로, 옛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아 국호가 정해졌습니다.
📌 핵심 정리
· 1392년 7월 17일 이성계 즉위
· 474년 고려 왕조 역사 속으로 소멸
· 국호 확정과 천도는 이후 과제로 남음
정몽주라는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진 뒤, 공양왕의 폐위와 신하들의 추대라는 절차를 거쳐 1392년 이성계는 마침내 새로운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918년부터 이어진 고려의 긴 역사가 저물고, 새로운 500년 왕조의 첫걸음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하고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 조선 건국 타임라인
1392년 — 정몽주 피살, 마지막 저항 소멸
1392년 7월 — 공양왕 폐위
1392년 7월 — 배극렴 등의 추대, 이성계 즉위
이후 — 국호·천도 확정은 후속 과제로 남음

📘 시리즈 목록
▶ #058 1392년, 조선이 건국되다 — 현재 글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과 구독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