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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거란의 3차 침입과 귀주대첩 — 소배압의 침공과 강감찬의 대승

한-스푼 2026. 8. 13. 10:47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표현한 대표 썸네일

2차 침입에서 물러난 뒤에도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달라며 고려를 계속 압박했습니다. 고려가 이를 거부하자 몇 해에 걸쳐 국지적인 충돌이 이어졌고, 결국 거란은 1018년 다시 한번 대군을 동원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이 이끈 귀주대첩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

거란의 강동 6주 반환 요구

2차 침입에서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한 거란은 이 손실을 강동 6주 반환 요구로 만회하려 했습니다. 서희의 담판으로 정식 인정받은 땅을 순순히 내줄 수 없었던 고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몇 해에 걸친 국지전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국경 지역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몇 해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고려가 이를 대체로 잘 막아내자, 거란은 결국 1018년 대규모 군사행동으로 다시 한번 승부를 보려 했습니다.

📖 용어 정리
강동 6주 —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고려가 확보한 압록강 이남의 여섯 지역으로, 이후 거란과의 지속적인 갈등 원인이 됩니다.

📌 핵심 정리
· 거란, 2차 침입 실패를 강동 6주 반환 요구로 만회 시도
· 고려는 이를 거부, 국지적 충돌 지속
· 1018년 거란, 대규모 3차 침입 결정

1018년, 소배압의 침공

10만 대군을 이끈 소배압

1018년 12월, 거란은 장수 소배압에게 10만 대군을 맡겨 다시 고려를 침공하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황제가 직접 나서지 않았지만, 병력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강감찬, 상원수로 나서다

고려는 이미 두 차례의 침입을 겪으며 방어 체계를 다져온 상태였습니다. 조정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아 20만이 넘는 병력으로 거란군을 맞이하게 했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눈길이 갔던 부분은, 앞선 두 차례 전쟁의 뼈아픈 경험이 이때는 오히려 철저한 대비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 스푼이 한마디
"똑같은 상대에게 세 번째로 침공을 당했지만, 이번 고려는 예전의 고려가 아니었어요. 두 차례의 전쟁이 쓰라린 예방주사가 되어준 셈이죠."
📖 용어 정리
소배압(蕭排押) — 거란의 장수로, 1018년 3차 침입을 이끈 인물입니다.

📌 핵심 정리
· 1018년 12월 소배압, 10만 대군으로 침공
· 고려,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아 방어
· 앞선 두 전쟁의 경험이 대비 태세로 이어짐

흥화진 물막이 작전

쇠가죽으로 물길을 막다

강감찬은 흥화진 근처 강물을 쇠가죽으로 막아 두었다가, 거란군이 강을 건너는 순간 둑을 터뜨려 큰 혼란에 빠뜨리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이 기습으로 거란군은 상당한 피해를 입고 대오가 흐트러졌습니다.

개경까지 남하했으나 성과 없이

초반 타격을 입고도 소배압은 개경까지 밀고 내려갔지만, 고려의 굳건한 방비 앞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배압은 병력을 돌려 철수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용어 정리
물막이 작전 — 강물을 막았다가 적이 도하할 때 터뜨려 타격을 입히는 전술로, 흥화진 전투에서 강감찬이 사용했습니다.

📌 핵심 정리
· 강감찬, 흥화진에서 물막이 작전으로 거란군 타격
· 소배압, 개경까지 남하했으나 성과 없음
· 결국 거란군 철수 결정

1019년, 귀주대첩

철수하는 거란군을 귀주에서 막다

1019년 2월, 철수하던 거란군은 귀주(지금의 평북 구성)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은 이곳에서 거란군을 완전히 포위하고 총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거란군의 궤멸

귀주 전투에서 거란군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고, 10만 대군 중 살아 돌아간 자가 수천 명에 불과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압도적인 승리로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고, 두 나라 사이에는 오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 스푼이 한마디
"10만 명 중 살아 돌아간 게 수천 명뿐이었다니, 정말 압도적인 승리였어요. 강감찬의 귀주대첩은 이후 100년 가까운 평화를 만들어낸 승리이기도 했답니다."
📖 용어 정리
귀주대첩(龜州大捷) — 1019년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로, 3차 여요전쟁을 종결시켰습니다.

📌 핵심 정리
· 1019년 2월 귀주에서 철수하던 거란군 포위·궤멸
· 거란군 대부분 전멸, 생환자 극소수
· 이후 고려-거란 간 장기적 평화 성립

993년 서희의 담판으로 시작된 고려와 거란의 긴 갈등은 1010년, 1018~1019년의 대규모 전쟁을 거치며 마침내 귀주대첩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강감찬의 승리는 단순한 전투 승리를 넘어, 이후 고려에 오랜 평화의 시대를 안겨준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전쟁 이후 고려가 국경 방비를 어떻게 다졌는지 다뤄보겠습니다.

📌 거란 3차 침입 타임라인

1018년 12월 — 소배압, 10만 대군으로 침공

1018년 — 흥화진 물막이 작전

1018년 — 소배압, 개경까지 남하 후 성과 없이 철수 결정

1019년 2월 — 귀주대첩, 거란군 궤멸

귀주대첩 과정을 레시피 형식으로 요약한 인포그래픽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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