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거란에 무너지던 무렵, 한반도 남쪽의 통일신라도 이미 오랜 시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강력했던 중앙집권 체제는 왕위를 둘러싼 귀족들의 다툼 속에 점차 무너져 갔고, 그 틈을 타 지방에서는 새로운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라 하대의 혼란이 어떻게 후삼국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무너지는 왕권, 신라 하대의 시작2. 골품제의 한계와 지방 호족의 성장3. 889년, 원종과 애노의 난4. 견훤과 궁예,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무너지는 왕권, 신라 하대의 시작혜공왕의 피살, 중대의 막이 내리다신문왕 이후 굳건했던 신라의 왕권은 8세기 후반 혜공왕 대에 이르러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혜공왕 시기에는 잇단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780년..
선왕이 이룩한 해동성국 발해는 이후로도 한동안 번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9세기 후반, 발해는 다시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에 휩싸이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균열은 결국 새롭게 떠오른 거란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번 편에서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가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 그 멸망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흔들리는 해동성국, 거란의 성장2. 924~925년, 거란과의 공방전3. 926년 1월, 부여성 함락과 상경 포위4. 발해 멸망 이후, 유민들의 저항과 이주흔들리는 해동성국, 거란의 성장대인선, 위태로운 시기에 왕위에 오르다선왕 이후 발해는 대이진, 대건황, 대현석을 거치며 한동안 안정을 유지했지만, 9세기 말에 접어들며 다시 국력이 약화되는 조..
무왕과 문왕이 다져놓은 발해는 이후 한동안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을 겪습니다. 그 혼란을 수습하고 발해를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가장 화려한 제도를 갖춘 나라로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선왕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발해가 '해동성국'이라 불리기까지, 선왕이 이룬 성과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혼란을 딛고 왕위에 오른 선왕2. 사방으로 뻗어나간 발해의 영토3. 5경 15부 62주, 지방 제도를 완성하다4. 해동성국,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혼란을 딛고 왕위에 오른 선왕문왕 이후 이어진 왕위 계승 혼란793년 문왕이 세상을 떠난 뒤, 발해는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왕이 잇달아 즉위하는 불안정한 시기를 겪었습니다. 폐왕, 성왕, 강왕, 정왕, 희왕, 간왕 등 여러 왕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여 년 만에 교..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그의 아들 무왕과 손자 문왕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몸집을 키웁니다. 당과 정면으로 맞붙는 전쟁까지 벌였던 무왕, 그리고 나라의 틀을 안정적으로 다진 문왕. 이번 편에서는 두 왕이 어떻게 발해를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시켰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무왕, 발해를 이어받다2. 장문휴, 등주를 기습하다3. 문왕, 나라의 체제를 정비하다4. 문왕, 발해국왕으로 책봉되다무왕, 발해를 이어받다대조영의 뒤를 이은 무왕719년, 고왕 대조영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대무예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바로 발해의 제2대 왕, 무왕입니다. 무왕은 즉위 후 독자적인 연호 '인안(仁安)'을 사용했습니다. 연호를 따로 세웠다는 것은 발해가 당의 눈치를 보는 소국이 아니라, 스스로를 독립된 천하의 중..
▮ 목차1. 문무왕,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유언2. 감은사 —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지은 절3. 만파식적 — 세상의 근심을 잠재우는 피리경주 동해바다 한가운데, 파도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바위 하나가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신라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묻혔다는 대왕암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아들 신문왕이 지은 절과 신비한 피리 이야기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번 번외편에서는 문무대왕릉부터 감은사, 만파식적까지, 한 편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호국 설화를 정리해보겠습니다.▮ 1. 문무왕,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유언삼국통일을 이룬 왕, 왜구를 걱정하다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신라의 삼국통일을 완성시킨 왕입니다. 그러나 통일 이후에도 신라는 마음을 놓을 수 ..
676년 신라의 삼국통일과 685년 신문왕의 체제 정비로 한반도 남쪽은 통일신라의 틀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북쪽 만주 땅에서는 또 다른 나라가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옛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말갈족과 손잡고 세운 나라, 바로 발해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696년 영주 탈출부터 713년 발해군왕 책봉까지,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는 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고구려 유민과 말갈, 영주를 탈출하다2. 천문령 전투, 대조영이 살아남다3. 동모산에서 세운 나라, 진국4. 대조영, 발해군왕에 책봉되다고구려 유민과 말갈, 영주를 탈출하다이진충의 난과 요서 지역의 혼란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많은 고구려 유민을 요서 지방의 영주(오늘날 랴오닝성 차오양 일대..
지난 편에서 #009~018을 통해 삼국시대 전체 흐름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번 편부터는 삼국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 통일신라와 발해가 함께하는 남북국시대를 다뤄보겠습니다. 그 첫 이야기는 통일 직후 신라를 이끈 신문왕이 어떻게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했는지입니다. 저는 통일 직후 벌어진 반란과 개혁 과정을 보면, 영토를 통일하는 것 못지않게 그 이후 나라의 틀을 다시 짜는 작업이 훨씬 더 지난한 과정이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목차1. 681년, 김흠돌의 난과 왕권 강화2. 지방 제도를 정비하다 — 9주 5소경3. 인재를 기르다 — 국학의 설립4. 경제 개혁 —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681년, 김흠돌의 난과 왕권 강화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문왕은 즉위하자마자 큰 위기를 맞이..
지금까지 #009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부터 #018 나당전쟁과 삼국통일의 완성까지, 10편에 걸쳐 삼국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다뤄왔습니다. 다만 각 나라의 건국사와 전성기를 따로따로 다루다 보니, 전체 흐름이 시간순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우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다시 정리하며, 각 사건이 어느 편에서 다뤄졌는지도 함께 표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전체를 한 번에 펼쳐놓고 보니, 7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 나라가 얼마나 치열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는지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목차1. 기원전 57년~313년 — 삼국의 건국, 세 나라가 첫걸음을 떼다2. 356년~568년 — 각자의 전성기, 삼국이 정점을 찍다3. 642년~671년 — 무..
지난 편에서 연개소문 사후 내분으로 무너진 고구려의 멸망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무너지자, 당은 본색을 드러내며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야심을 노골화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라가 어제의 동맹국 당과 정면으로 맞붙은 나당전쟁과, 매소성·기벌포 전투를 거쳐 마침내 삼국통일을 완성하는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신라가 두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동맹국까지 몰아내야 했다는 사실이 삼국통일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목차1. 동맹에서 적으로 —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2. 나당전쟁, 본격적으로 불붙다3. 675년, 매소성 전투4. 676년, 기벌포 해전과 삼국통일의 완성동맹에서 적으로 —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백제와 고구려를..
지난 편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와 황산벌 전투, 그리고 660년 백제의 멸망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백제에 이어 삼국 중 두 번째로 무너지게 되는 고구려의 멸망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연개소문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 뒤, 고구려는 내부 분열이라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균열이 나라를 더 빨리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목차1. 연개소문의 죽음과 아들들의 내분2. 나당연합군, 고구려를 침공하다3. 668년, 평양성 함락과 보장왕의 최후4. 고구려부흥운동과 유민들의 저항연개소문의 죽음과 아들들의 내분강압적인 통치로 고구려를 이끌던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자, 그동안 억눌려 있던 내부 갈등이 한꺼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