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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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말고, 이해하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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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 무오사화 — 죽은 자의 글이 부른 첫 번째 사화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등용한 사림파는 삼사를 기반으로 목소리를 키워왔지만,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사초에 실리면서 위태로운 불씨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즉위하자, 이 불씨는 마침내 조선 최초의 사화로 폭발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1498년 무오사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연산군 즉위와 훈구파의 반격2. 이극돈과 유자광의 밀고3. 김일손의 처형과 부관참시4. 사림파, 첫 시련을 겪다연산군 즉위와 훈구파의 반격사림파의 거센 견제에 지친 훈구파성종 대 내내 삼사를 통한 사림파의 비판에 시달려온 훈구파는, 새 왕이 즉위한 이 시점을 반격의 기회로 여기고 있었습니다.연산군의 성향1494년 즉위한 연산군은 신하들의 직언과 견제를 몹시 못마땅해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는 훈구파가 사림파를 공..

카테고리 없음 2026. 9. 21. 20:00
#070 훈구파와 사림파 —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충돌

경국대전 반포로 통치 체제를 완성한 성종에게는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세조 즉위를 도운 공신, 즉 훈구파가 오랜 세월 권력을 독점하며 새로운 문벌로 굳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종은 이를 견제할 새로운 세력을 찾아 나섰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훈구파와 사림파의 등장과 그 갈등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훈구파, 권력의 중심에 서다2. 사림파, 지방에서 중앙으로3. 김종직과 조의제문4. 갈등의 씨앗이 자라나다훈구파, 권력의 중심에 서다세조 즉위를 도운 공신들계유정난과 세조의 즉위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한명회, 신숙주 등의 공신들은 이후 막대한 정치적·경제적 특권을 누리며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들을 훈구파라 부릅니다.대를 이은 권력 세습훈구파는 왕실과의 혼인, 대규모 토지 ..

카테고리 없음 2026. 9. 20. 08:59
#069 성종과 경국대전 — 조선 통치 체제의 완성

세조가 강력한 왕권으로 국정을 장악한 뒤, 그 뒤를 이은 예종과 성종의 시대에 조선은 마침내 국가 운영의 근본이 될 법전을 완성하게 됩니다. 태조 대부터 시작된 오랜 편찬 작업의 결실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성종 대에 완성된 경국대전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성종, 어린 나이에 즉위하다2. 오랜 편찬의 역사3. 1485년, 경국대전 반포4. 홍문관과 유교 정치의 완성성종, 어린 나이에 즉위하다예종의 짧은 재위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은 즉위한 지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세조의 손자인 성종이 열세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할머니의 수렴청정어린 성종을 대신해 할머니 정희왕후가 한동안 수렴청정을 하며 국정을 이끌었습니다. 이 안정적인 과도기를 거치며, 성종은 점차 친정 체제를 갖춰나가게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9. 12:55
#068 세조의 집권과 사육신 — 단종 복위 운동의 좌절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손에 넣은 수양대군에게, 남은 것은 이제 형식적인 왕위마저 차지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부당한 왕위 찬탈에 맞서, 목숨을 걸고 단종의 복위를 꾀한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세조의 즉위와 사육신의 저항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455년, 단종의 양위2. 사육신, 복위를 꾀하다3. 발각과 처형4. 세조의 왕권 강화1455년, 단종의 양위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어린 왕계유정난 이후 실권을 완전히 잃은 단종은, 1455년 결국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자진 양위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요된 찬탈이었습니다.세조의 즉위이렇게 수양대군은 조선의 7대 왕 세조로 즉위했습니다. 형식은 갖췄지만, 이는 명백한 왕위 찬탈이었습니다.📖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8. 16:30
#067 계유정난 — 수양대군, 조카의 왕위를 빼앗다

4군 6진 개척으로 영토까지 확장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선이었지만,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왕실은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른 틈을 타, 야심 찬 숙부 하나가 결국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453년 계유정난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문종의 요절과 단종의 즉위2. 김종서와 황보인, 어린 왕을 뒷받침하다3. 수양대군의 야심4. 1453년, 계유정난문종의 요절과 단종의 즉위병약했던 문종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학식이 뛰어난 왕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습니다. 즉위한 지 채 3년이 되지 않아 그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열두 살의 어린 왕문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겨우 열두 살이었던 아들 단종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어린 왕이 홀로 국..

카테고리 없음 2026. 9. 17. 15:26
#066 4군 6진 개척 —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넓힌 국경

훈민정음과 여러 과학 기구로 문화적 황금기를 이끈 세종이었지만, 그의 업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북방에서는 여진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던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세종은 두 명장을 앞세워 조선의 영토로 확실히 편입시킵니다. 이번 편에서는 4군 6진 개척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여진족과의 오랜 갈등2. 최윤덕과 4군 개척3. 김종서와 6진 개척4. 사민 정책과 국경의 완성여진족과의 오랜 갈등불안정한 북쪽 국경고려 말부터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는 여진족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이들은 종종 조선의 국경을 넘어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명확한 지배권이 확립되지 않은 불안정한 곳이었습니다.세종의 결단세종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두 강을 실질적인 국경으로 확정하고 그..

카테고리 없음 2026. 9. 16. 18:49
#065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 — 장영실과 하늘을 살피는 기구들

훈민정음이 백성을 향한 세종의 애정을 보여주는 업적이었다면, 과학기술 분야의 성과는 농업 국가 조선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결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분의 벽을 넘어 발탁된 한 천재 기술자, 장영실이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 발전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관노 출신, 장영실2. 측우기, 비의 양을 재다3. 앙부일구와 자격루4. 혼천의, 하늘을 관측하다관노 출신, 장영실신분을 뛰어넘은 발탁장영실은 본래 동래현 관노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그의 뛰어난 기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어 그를 궁중 기술자로 발탁했습니다.명나라 유학까지 보낸 파격세종은 장영실을 명나라에 유학까지 보내 선진 기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신분보다 능력을 우선한 이러한 파격적인..

카테고리 없음 2026. 9. 15. 11:25
#064 훈민정음의 창제 — 백성을 위해 만든 우리 글자

집현전을 통해 학문적 토대를 다진 세종에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려운 한자 때문에 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들의 답답함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세종 최고의 업적으로 꼽히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설움2. 1443년, 훈민정음 창제3. 신하들의 반대4. 1446년, 반포와 그 원리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설움글자가 없어 억울했던 사람들당시 문자 생활은 오로지 한자로만 이루어졌는데, 이는 오랜 시간 학문을 닦은 소수의 지식인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다수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이를 글로 남기거나 호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세종의 애민 정신세종은 이러한 현실을 깊이 안타까워하며,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우고..

카테고리 없음 2026. 9. 14. 05:34
#063 세종의 즉위와 초기 통치 — 상왕과 함께한 준비의 시간

사병 혁파와 6조직계제로 강력한 왕권을 다진 태종은, 뜻밖에도 맏아들이 아닌 셋째 아들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결심합니다. 이렇게 즉위한 인물이 바로 훗날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세종의 즉위와 초기 통치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세자 양녕대군의 폐위2. 1418년, 충녕대군의 즉위3. 상왕 태종의 병권 장악4. 집현전, 인재를 기르다세자 양녕대군의 폐위원래의 세자, 양녕대군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은 일찍이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문보다 사냥과 풍류를 즐기며 여러 차례 물의를 일으켰습니다.세자 자리에서 물러나다거듭된 일탈에 실망한 태종은 결국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하고, 학문에 뛰어났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새로운 세자로 삼았습니다.📖 용어 정..

카테고리 없음 2026. 9. 13. 09:32
#062 태종의 왕권 강화 — 사병 혁파부터 6조직계제까지

두 차례의 유혈 충돌을 겪으며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자와 공신들이 저마다 거느린 사병이었습니다. 그는 즉위 이후 이러한 위협 요소를 뿌리 뽑고, 왕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사병 혁파의 완성2. 6조직계제, 왕이 직접 다스리다3. 호패법, 백성을 파악하다4. 신문고, 백성의 목소리를 듣다사병 혁파의 완성정도전이 남긴 미완의 과제아이러니하게도 정도전이 추진하다 목숨을 잃었던 사병 혁파는, 그를 제거한 태종의 손으로 완성됩니다. 왕자와 종친, 공신들이 거느리던 사병은 모두 국가 소속 군대로 흡수되었습니다.두 번 다시 없을 왕자의 난이로써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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