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KOREA

🥄 한국사 쉽게 먹자

"역사! 외우지 말고, 이해하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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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 몽골의 침입이 시작되다 — 저고여 피살부터 귀주성 항전까지

최충헌이 다진 최씨 무신정권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던 시기, 북쪽 초원에서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유라시아를 뒤흔드는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세력은 곧 고려의 운명에도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몽골과의 첫 충돌이 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몽골,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2.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3. 1231년, 살리타이의 침공4. 귀주성의 항전몽골,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칭기즈칸의 급부상13세기 초, 칭기즈칸은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파죽지세로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순식간에 중앙아시아와 화북 일대까지 세력을 뻗친 몽골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를 뒤흔드는 존재로 떠올랐습니다.거란 유민 토벌을 계기로 한 첫 접촉1219년, 고려는 몽골군과 손..

카테고리 없음 2026. 8. 20. 22:40
#039 최충헌과 무신정권의 안정 — 교정도감과 4대 세습

1170년 무신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무신들이었지만, 정작 그들 사이의 권력 다툼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정중부에서 경대승, 다시 이의민으로 권력이 옮겨가던 혼란은 1196년 최충헌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최충헌이 무신정권을 안정시키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정중부 이후 이어진 권력 다툼2. 1196년, 최충헌의 집권3. 봉사 10조와 교정도감4. 4대에 걸친 최씨 정권정중부 이후 이어진 권력 다툼정중부와 경대승무신정변을 주도했던 정중부는 이의방, 이고 등 동료를 차례로 제거하며 권력을 장악했지만, 결국 젊은 장수 경대승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경대승은 사병 집단인 도방을 조직해 권력을 지키려 했지만 젊은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이의민의 집권과 몰락경대승 사..

카테고리 없음 2026. 8. 19. 15:30
#038 무신정변, 문신의 시대가 저물다 — 보현원 사건과 의종 폐위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진압된 뒤에도 고려의 문신 중심 체제는 흔들리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오랫동안 차별받아온 무신들의 불만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170년 폭발한 무신정변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오랫동안 쌓인 무신의 불만2. 의종의 향락과 문신 우대3. 1170년, 보현원 사건4. 정변의 결말과 의종 폐위오랫동안 쌓인 무신의 불만문신 중심 체제의 그늘고려는 건국 이래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상대적으로 낮게 대우하는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아무리 큰 군공을 세워도 무신이 오를 수 있는 관직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는 오랜 시간 무신들의 불만으로 쌓여갔습니다.문신에게 당하는 수모일부 문신들은 노골적으로 무신을 얕보고 모욕하기까지 했습니다.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8. 13:27
#037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대위국 반란과 김부식의 진압

이자겸의 난으로 왕실의 권위가 크게 흔들린 뒤, 개경의 문벌귀족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 중심에 승려 묘청이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내세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진압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2.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3. 1135년, 대위국 반란4. 김부식의 진압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서경 길지설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쇠하고 서경(지금의 평양)에 왕성한 기운이 있다는 풍수설을 내세우며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건의했습니다. 정지상 등 서경 출신 관료들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탰습니다.칭제건원과 금국정벌론묘청 세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려도 황제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사용해야 하며 금나라를 정벌해야..

카테고리 없음 2026. 8. 17. 23:15
#036 이자겸의 난 — 권력의 정점에서 몰락까지

경원 이씨 가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권력은 결국 이자겸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왕의 장인이자 외할아버지라는 이중의 위치에 오른 이자겸은, 급기야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심까지 품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1126년 벌어진 이자겸의 난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이자겸, 권력의 정점에 서다2. 1126년, 반란의 시작3. 척준경의 배신4. 이자겸의 난이 남긴 것이자겸, 권력의 정점에 서다두 딸을 왕비로 들이다이자겸은 자신의 딸을 예종의 왕비로 들인 데 이어, 인종이 즉위하자 다시 자신의 다른 두 딸을 인종의 왕비로 삼게 했습니다. 이로써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라는 유례없는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조정을 장악한 권력왕실과 겹겹이 얽힌 혼인 관계를 바탕으로, 이자겸은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6. 07:31
#035 문벌귀족사회의 성립 — 음서제·공음전과 경원 이씨의 부상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고 오랜 평화가 이어지자, 고려 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과거제를 통해 등용된 관료들이 점차 특정 가문 중심으로 세력을 굳히며, 대대로 권력을 대물림하는 문벌귀족사회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문벌귀족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평화가 낳은 새로운 지배층2. 음서제, 대물림되는 관직3. 공음전, 세습되는 경제력4. 대표 가문, 경원 이씨의 부상평화가 낳은 새로운 지배층과거제 관료층의 세력화광종 대에 도입된 과거제를 통해 등용된 관료들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성종 대의 유교적 체제 정비와 맞물려, 이들은 고려 정치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습니다.세습되는 권력본래 실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뽑던 과..

카테고리 없음 2026. 8. 15. 05:50
#034 나성과 천리장성, 국경을 지키다 — 전후 국경 방비의 완성

귀주대첩으로 거란의 침공을 완전히 물리친 고려였지만, 조정은 여기서 안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 고려는 본격적으로 국경과 수도의 방비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개경을 둘러싼 나성과 북방의 천리장성이 축조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029년, 개경을 둘러싼 나성2. 천리장성, 북방의 방패를 쌓다3. 초조대장경, 부처의 힘을 빌리다4. 전쟁 이후, 고려의 안정기1029년, 개경을 둘러싼 나성수도 함락의 뼈아픈 교훈2차 침입 당시 개경이 함락되었던 경험은 고려 조정에 깊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도성 자체를 지킬 성벽이 부실했다는 반성 속에서, 개경을 둘러싼 대규모 성곽을 쌓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나성의 완공1009년경 시작된 나성 축조는 여러..

카테고리 없음 2026. 8. 14. 15:55
#033 거란의 3차 침입과 귀주대첩 — 소배압의 침공과 강감찬의 대승

2차 침입에서 물러난 뒤에도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달라며 고려를 계속 압박했습니다. 고려가 이를 거부하자 몇 해에 걸쳐 국지적인 충돌이 이어졌고, 결국 거란은 1018년 다시 한번 대군을 동원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이 이끈 귀주대첩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2. 1018년, 소배압의 침공3. 흥화진 물막이 작전4. 1019년, 귀주대첩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거란의 강동 6주 반환 요구2차 침입에서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한 거란은 이 손실을 강동 6주 반환 요구로 만회하려 했습니다. 서희의 담판으로 정식 인정받은 땅을 순순히 내줄 수 없었던 고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몇 해에 걸친 국지전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국경 지역에서는 크..

카테고리 없음 2026. 8. 13. 10:47
#032 거란의 2차 침입과 강조의 정변 — 개경 함락부터 양규의 반격까지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한동안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009년 고려 조정에서 벌어진 정변 하나가 다시 전쟁의 불씨를 지피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이 다시 고려를 침공한 2차 침입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009년, 강조의 정변2. 1010년, 거란의 재침공3. 개경 함락과 현종의 피난4. 양규의 반격과 거란의 철수1009년, 강조의 정변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사사로이 관계를 맺고, 자신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는 왕실의 정통성을 크게 흔드는 일이었고, 조정 안팎에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강조, 군사를 일으켜 현종을 옹립하다서북면도순검사 강조는 군사를 이끌..

카테고리 없음 2026. 8. 12. 09:53
#031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서희는 어떻게 강동 6주를 얻었을까 — 소손녕과의 담판 전 과정

성종이 유교 정치의 틀을 세우며 나라 안을 정비하던 무렵, 북쪽에서는 새로운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993년, 거란의 대군이 고려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조정이 항복과 할지론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 순간, 홀로 담판을 자청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희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과, 서희가 말로 전쟁을 끝내고 강동 6주를 얻어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93년, 거란의 1차 침입2. 서희, 담판을 자청하다3. 국경 담판, 말로 싸우다4. 강동 6주, 담판이 남긴 결실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소손녕의 침공과 봉산 전투993년, 거란은 동경유수 소손녕을 앞세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거란군은 청천강 이북의 봉산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고, "거란이 이미 고..

카테고리 없음 2026. 8. 1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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