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년 신라의 삼국통일과 685년 신문왕의 체제 정비로 한반도 남쪽은 통일신라의 틀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북쪽 만주 땅에서는 또 다른 나라가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옛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말갈족과 손잡고 세운 나라, 바로 발해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696년 영주 탈출부터 713년 발해군왕 책봉까지,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는 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고구려 유민과 말갈, 영주를 탈출하다2. 천문령 전투, 대조영이 살아남다3. 동모산에서 세운 나라, 진국4. 대조영, 발해군왕에 책봉되다고구려 유민과 말갈, 영주를 탈출하다이진충의 난과 요서 지역의 혼란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뒤, 당은 많은 고구려 유민을 요서 지방의 영주(오늘날 랴오닝성 차오양 일대..
지난 편에서 #009~018을 통해 삼국시대 전체 흐름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번 편부터는 삼국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 통일신라와 발해가 함께하는 남북국시대를 다뤄보겠습니다. 그 첫 이야기는 통일 직후 신라를 이끈 신문왕이 어떻게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했는지입니다. 저는 통일 직후 벌어진 반란과 개혁 과정을 보면, 영토를 통일하는 것 못지않게 그 이후 나라의 틀을 다시 짜는 작업이 훨씬 더 지난한 과정이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목차1. 681년, 김흠돌의 난과 왕권 강화2. 지방 제도를 정비하다 — 9주 5소경3. 인재를 기르다 — 국학의 설립4. 경제 개혁 —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681년, 김흠돌의 난과 왕권 강화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문왕은 즉위하자마자 큰 위기를 맞이..
지금까지 #009 고구려의 성장과 발전부터 #018 나당전쟁과 삼국통일의 완성까지, 10편에 걸쳐 삼국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하나씩 다뤄왔습니다. 다만 각 나라의 건국사와 전성기를 따로따로 다루다 보니, 전체 흐름이 시간순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우셨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다시 정리하며, 각 사건이 어느 편에서 다뤄졌는지도 함께 표시해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전체를 한 번에 펼쳐놓고 보니, 7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세 나라가 얼마나 치열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는지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목차1. 기원전 57년~313년 — 삼국의 건국, 세 나라가 첫걸음을 떼다2. 356년~568년 — 각자의 전성기, 삼국이 정점을 찍다3. 642년~671년 — 무..
지난 편에서 연개소문 사후 내분으로 무너진 고구려의 멸망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차례로 무너지자, 당은 본색을 드러내며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두려는 야심을 노골화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라가 어제의 동맹국 당과 정면으로 맞붙은 나당전쟁과, 매소성·기벌포 전투를 거쳐 마침내 삼국통일을 완성하는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신라가 두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동맹국까지 몰아내야 했다는 사실이 삼국통일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목차1. 동맹에서 적으로 —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2. 나당전쟁, 본격적으로 불붙다3. 675년, 매소성 전투4. 676년, 기벌포 해전과 삼국통일의 완성동맹에서 적으로 — 당의 한반도 지배 야욕백제와 고구려를..
지난 편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와 황산벌 전투, 그리고 660년 백제의 멸망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백제에 이어 삼국 중 두 번째로 무너지게 되는 고구려의 멸망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연개소문이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세상을 떠난 뒤, 고구려는 내부 분열이라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균열이 나라를 더 빨리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목차1. 연개소문의 죽음과 아들들의 내분2. 나당연합군, 고구려를 침공하다3. 668년, 평양성 함락과 보장왕의 최후4. 고구려부흥운동과 유민들의 저항연개소문의 죽음과 아들들의 내분강압적인 통치로 고구려를 이끌던 연개소문이 세상을 떠나자, 그동안 억눌려 있던 내부 갈등이 한꺼번..
▮ 목차1. 불상 이름의 비밀 — 명명 순서의 공식2. 손 모양이 말해주는 것 — 대표적인 수인의 종류3. 자세로 완성되는 이름 — 대표 문화유산으로 살펴보기4. 부처와 보살, 이름을 확정 짓는 서로 다른 단서"경주 석굴암 석굴 본존불",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처럼 불상의 이름은 유난히 길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긴 이름에는 사실 정해진 공식이 숨어 있습니다. 지난 번외편에서 부처와 보살의 차이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그 불상들의 이름이 손 모양과 자세에 따라 어떻게 지어지는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예로 들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불상 이름의 비밀 — 명명 순서의 공식소재지 + 재질 + 존명 + 존격 + 자세의 공식국가유산청이 불상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은 일정한 순..
▮ 목차1. 부처란 무엇인가 — 깨달음을 이룬 존재2. 보살이란 무엇인가 — 중생을 구제하는 조력자3. 한눈에 구분하는 법 — 생김새로 보는 부처와 보살절에 가면 대웅전 한가운데 근엄하게 앉아 계신 분과, 그 옆에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서 계신 분을 함께 만나게 됩니다. 흔히 이 두 존재를 뭉뚱그려 '부처님'이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쪽은 부처이고 한쪽은 보살입니다. 이번 번외편에서는 부처와 보살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겉모습만으로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1. 부처란 무엇인가 — 깨달음을 이룬 존재부처의 의미와 어원부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한자로 옮긴 말로, '깨달은 사람' 또는 '깨달은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부처는 특정한 한 사람..
▮ 목차1. 삼국시대의 첫 도입: 목숨을 건 전파와 이차돈의 하얀 피2. 고려시대의 번성기: 왕실의 지원과 국교가 된 호국 불교3. 조선과 현재: 억불 5백 년의 시련을 넘어 우리 곁에 남은 온기▮ 1. 삼국시대의 첫 도입: 목숨을 건 전파와 이차돈의 하얀 피▮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을 넘은 외교적 수용한국의 긴 역사 속에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국가적 위기 때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결속시키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거대한 정신적 대들보였습니다. 불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오던 과정은 선진 문물과 사상을 수용하는 국가적 외교 결단이었습니다. 기록상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한 국가적인 기틀은 고구려에서 마련되었습니다.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함께 파견하..
지난 편에서 신라 진흥왕이 대가야를 정복하고 화랑도를 정비하며 전성기를 이끄는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렇게 성장한 신라가 결국 백제를 무너뜨리게 되는 660년 백제 멸망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계백의 5천 결사대와 황산벌 전투, 의자왕의 항복, 그리고 이후 이어진 백제부흥운동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저는 이 시기 기록을 볼 때마다, 나라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습니다.목차1. 나당연합군, 결성되다2. 660년, 황산벌 전투3. 사비성 함락과 의자왕의 항복4. 백제부흥운동과 백강 전투나당연합군, 결성되다백제 멸망의 배경에는 신라와 당의 특별한 동맹이 있었고,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비극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642년, 대야성 함락과 김춘추의 ..
지난 편에서 근초고왕과 침류왕을 거치며 완성된 백제의 전성기를 살펴봤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라 역사상 최대 영토를 이룩한 진흥왕의 전성기를 다뤄보겠습니다. 진흥왕은 한강 유역 확보뿐 아니라 대가야 정복, 화랑도 정비, 그리고 함경도까지 진출하며 신라를 삼국 중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진흥왕 순수비를 보면 한 왕의 재위 기간 동안 국경선이 이렇게까지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느껴집니다.목차1. 진흥왕, 정복 군주로 나서다2.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다3. 화랑도, 인재를 길러내다4. 순수비로 남은 진흥왕의 영토 — 함경도까지진흥왕, 정복 군주로 나서다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진흥왕은 즉위 초반부터 적극적인 대외 팽창 정책을 펼치며 신라를 삼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