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년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한때 후삼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기세를 떨쳤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커질수록 그의 통치는 점점 더 잔혹해졌고, 결국 자신이 세운 신하들의 손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고려 건국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미륵불을 자처한 궁예의 폭정2. 왕건, 신망을 얻다3. 918년, 궁예의 축출과 왕건의 즉위4. 고려, 새 나라의 문을 열다미륵불을 자처한 궁예의 폭정국호 변경과 미륵관심법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는 다시 태봉으로 바꾸며 신정적 전제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한 그는 '미륵관심법'이라는 독심술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 세력을 가차 없이 제거했습니다.부인..
발해가 거란에 무너지던 무렵, 한반도 남쪽의 통일신라도 이미 오랜 시간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강력했던 중앙집권 체제는 왕위를 둘러싼 귀족들의 다툼 속에 점차 무너져 갔고, 그 틈을 타 지방에서는 새로운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라 하대의 혼란이 어떻게 후삼국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무너지는 왕권, 신라 하대의 시작2. 골품제의 한계와 지방 호족의 성장3. 889년, 원종과 애노의 난4. 견훤과 궁예, 새로운 나라를 꿈꾸다무너지는 왕권, 신라 하대의 시작혜공왕의 피살, 중대의 막이 내리다신문왕 이후 굳건했던 신라의 왕권은 8세기 후반 혜공왕 대에 이르러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혜공왕 시기에는 잇단 반란이 일어났고, 결국 7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