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 후삼국통일을 완성한 태조 왕건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강력한 호족들을 어떻게 하나의 나라 안으로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조 왕건이 고려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펼친 여러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3. 943년, 훈요십조를 남기다4. 북진정책과 발해 유민 포섭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9명의 부인, 정략혼의 규모태조 왕건은 전국 각지의 유력 호족 가문과 혼인을 맺어 그들을 왕실의 인척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왕건은 무려 29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는데, 이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호족을 통합하기 위한 철저한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왕실 인척이 된 호족들혼인을..
▮ 목차1. 삼국시대의 첫 도입: 목숨을 건 전파와 이차돈의 하얀 피2. 고려시대의 번성기: 왕실의 지원과 국교가 된 호국 불교3. 조선과 현재: 억불 5백 년의 시련을 넘어 우리 곁에 남은 온기▮ 1. 삼국시대의 첫 도입: 목숨을 건 전파와 이차돈의 하얀 피▮ 고구려와 백제의 국경을 넘은 외교적 수용한국의 긴 역사 속에서 불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국가적 위기 때마다 백성들의 마음을 결속시키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거대한 정신적 대들보였습니다. 불교가 한반도에 처음 들어오던 과정은 선진 문물과 사상을 수용하는 국가적 외교 결단이었습니다. 기록상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한 국가적인 기틀은 고구려에서 마련되었습니다. 372년(소수림왕 2년), 중국 전진의 왕 부견이 사신과 승려 순도를 함께 파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