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종이 강력한 왕권을 세웠다면, 그 뒤를 이은 성종은 그 힘을 바탕으로 유교적 통치 이념에 따라 국가 체제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최승로의 건의로 시작된 성종의 체제 정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2. 2성 6부제, 중앙 관제를 정비하다3. 983년, 12목과 지방관 파견4. 국자감과 유교 인재 양성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5조 정적평, 다섯 왕을 평가하다982년, 성종의 요청으로 신하 최승로는 태조부터 경종까지 다섯 왕의 정치를 평가한 '오조정적평'과 함께 개혁안을 담은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 상소에서 최승로는 광종의 지나친 왕권 강화와 공신 숙청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시무 28조, 유교 정치의 청사진최승로는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 ..
태조 왕건이 호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면, 그의 아들 광종은 정반대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강력한 개혁으로 호족의 힘을 꺾고 왕권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세운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종이 펼친 개혁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56년, 노비안검법2. 958년, 과거제의 도입3. 칭제건원과 공신 숙청4. 광종 개혁이 남긴 의미956년, 노비안검법호족의 힘, 사병과 노비에서 나오다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들은 전쟁 포로나 몰락한 양인을 노비로 삼으며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이 노비들은 호족의 경제적 기반이자 사병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호족의 권력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부당하게 노비가 된 자를 풀어주다956년,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시행해 원래 양인이었다가 불법으로 노비가..
936년 후삼국통일을 완성한 태조 왕건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강력한 호족들을 어떻게 하나의 나라 안으로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조 왕건이 고려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펼친 여러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3. 943년, 훈요십조를 남기다4. 북진정책과 발해 유민 포섭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9명의 부인, 정략혼의 규모태조 왕건은 전국 각지의 유력 호족 가문과 혼인을 맺어 그들을 왕실의 인척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왕건은 무려 29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는데, 이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호족을 통합하기 위한 철저한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왕실 인척이 된 호족들혼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