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 후삼국통일을 완성한 태조 왕건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강력한 호족들을 어떻게 하나의 나라 안으로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조 왕건이 고려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펼친 여러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3. 943년, 훈요십조를 남기다4. 북진정책과 발해 유민 포섭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9명의 부인, 정략혼의 규모태조 왕건은 전국 각지의 유력 호족 가문과 혼인을 맺어 그들을 왕실의 인척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왕건은 무려 29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는데, 이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호족을 통합하기 위한 철저한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왕실 인척이 된 호족들혼인을..
선왕이 이룩한 해동성국 발해는 이후로도 한동안 번영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9세기 후반, 발해는 다시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혼란에 휩싸이며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균열은 결국 새롭게 떠오른 거란에게 나라를 넘겨주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번 편에서는 해동성국이라 불리던 발해가 어떻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 그 멸망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흔들리는 해동성국, 거란의 성장2. 924~925년, 거란과의 공방전3. 926년 1월, 부여성 함락과 상경 포위4. 발해 멸망 이후, 유민들의 저항과 이주흔들리는 해동성국, 거란의 성장대인선, 위태로운 시기에 왕위에 오르다선왕 이후 발해는 대이진, 대건황, 대현석을 거치며 한동안 안정을 유지했지만, 9세기 말에 접어들며 다시 국력이 약화되는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