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이 조판되는 16년 동안에도, 몽골의 침입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살리타이가 처인성에서 목숨을 잃은 뒤에도 몽골은 계속해서 새로운 장수를 보내며 고려를 압박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계속된 몽골의 침입과, 김윤후가 다시 한번 활약하는 충주성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끝나지 않는 몽골의 침입2. 초토화되는 국토3. 1253년, 충주성 전투4. 다시 한번 증명된 저력끝나지 않는 몽골의 침입지휘관이 바뀌어도 계속된 침공살리타이 사후에도 몽골은 당구, 야굴 등 새로운 장수를 앞세워 거듭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고려는 무려 여섯 차례에 걸친 대규모 침입을 겪게 됩니다.강화도만은 건드리지 못한 몽골몽골은 육지 곳곳을 초토화시켰지만, 끝내 강화도의 조정을 무너뜨리지는 ..
고려의 강화도 천도는 몽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살리타이는 다시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고, 이번에는 개경을 넘어 더 깊숙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름조차 낯선 작은 토성 처인성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번 편에서는 몽골의 2차 침입과 처인성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몽골의 2차 침입2. 남하하는 살리타이3. 처인성의 승려 김윤후4. 화살 한 발이 바꾼 전쟁몽골의 2차 침입천도를 꾸짖은 살리타이1232년 8월, 살리타이는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고 몽골이 세운 다루가치를 살해한 것을 문제 삼으며 다시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이를 거부했습니다.서경의 반적과 손을 잡다살리타이는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투항한 홍복원 세력..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앞에서 대부분의 성이 무너졌지만, 귀주성만은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이 경험을 지켜본 집권자 최우는 정면 대결 대신 전혀 다른 방식의 항전을 택합니다. 바로 수도를 섬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232년 단행된 강화도 천도의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몽골의 요구와 고려의 선택2. 최우, 천도를 결정하다3. 조정의 반발과 강행4. 강화도, 새로운 임시 수도몽골의 요구와 고려의 선택1231년 화친과 다루가치 설치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이후 고려는 몽골과 화친을 맺었지만, 몽골은 서경 등 여러 곳에 다루가치를 두어 고려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고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인 조치였습니다.몽골이 약한 바다초원에서 일어난 몽골군..
최충헌이 다진 최씨 무신정권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던 시기, 북쪽 초원에서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유라시아를 뒤흔드는 대제국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세력은 곧 고려의 운명에도 깊숙이 관여하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몽골과의 첫 충돌이 시작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몽골,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2. 1225년, 저고여 피살 사건3. 1231년, 살리타이의 침공4. 귀주성의 항전몽골,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칭기즈칸의 급부상13세기 초, 칭기즈칸은 몽골 초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파죽지세로 영토를 넓혀갔습니다. 순식간에 중앙아시아와 화북 일대까지 세력을 뻗친 몽골은 동아시아 전체의 판도를 뒤흔드는 존재로 떠올랐습니다.거란 유민 토벌을 계기로 한 첫 접촉1219년, 고려는 몽골군과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