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침입에서 물러난 뒤에도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달라며 고려를 계속 압박했습니다. 고려가 이를 거부하자 몇 해에 걸쳐 국지적인 충돌이 이어졌고, 결국 거란은 1018년 다시 한번 대군을 동원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이 이끈 귀주대첩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2. 1018년, 소배압의 침공3. 흥화진 물막이 작전4. 1019년, 귀주대첩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거란의 강동 6주 반환 요구2차 침입에서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한 거란은 이 손실을 강동 6주 반환 요구로 만회하려 했습니다. 서희의 담판으로 정식 인정받은 땅을 순순히 내줄 수 없었던 고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몇 해에 걸친 국지전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국경 지역에서는 크..
성종이 유교 정치의 틀을 세우며 나라 안을 정비하던 무렵, 북쪽에서는 새로운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993년, 거란의 대군이 고려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조정이 항복과 할지론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 순간, 홀로 담판을 자청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희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과, 서희가 말로 전쟁을 끝내고 강동 6주를 얻어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93년, 거란의 1차 침입2. 서희, 담판을 자청하다3. 국경 담판, 말로 싸우다4. 강동 6주, 담판이 남긴 결실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소손녕의 침공과 봉산 전투993년, 거란은 동경유수 소손녕을 앞세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거란군은 청천강 이북의 봉산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고, "거란이 이미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