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철 숙청과 쌍성총관부 수복으로 대외적 자주성을 되찾은 공민왕은, 이제 안으로 눈을 돌립니다. 오랜 원 간섭기 동안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와 노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신돈이라는 파격적인 인물을 등용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돈의 개혁과 전민변정도감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권문세족과 사회 문제2. 신돈의 등용3. 1366년, 전민변정도감4. 개혁의 좌절권문세족과 사회 문제원 간섭기에 성장한 새 지배층원 간섭기 동안 원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성장한 권문세족은, 불법적으로 백성의 토지를 빼앗아 대농장을 만들고 양인을 노비로 삼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국가 재정과 민생의 위기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이 심해질수록 국가에 세금을 낼 백성은 줄어들고, 힘없는 양인들은 노비로 전..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 원나라 자체가 안팎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립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과감한 개혁에 나선 인물이 바로 공민왕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공민왕의 반원 개혁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흔들리는 원나라, 기회를 엿보다2. 1356년, 기철 세력의 숙청3.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다4.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흔들리는 원나라, 기회를 엿보다쇠퇴하는 원나라14세기 중반, 원나라는 각지에서 일어난 홍건적의 봉기 등으로 국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대제국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습니다.공민왕, 즉위하다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즉위한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
삼별초의 마지막 저항까지 진압되면서, 고려는 40년 넘게 이어온 대몽 항쟁의 시대를 완전히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고려는 이제 원나라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은 부마국으로, 사실상 원의 간섭 아래 놓이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원 간섭기 고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부마국이 된 고려2. 정동행성과 영토 축소3. 공녀와 결혼도감4. 몽골풍과 고려양부마국이 된 고려충렬왕과 원나라 공주의 혼인원종의 뒤를 이은 충렬왕은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과 혼인하며, 고려는 원나라 황실의 사위 나라, 즉 부마국이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 왕들은 대대로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는 관례가 이어졌습니다.격하된 왕실의 호칭부마국이 된 고려는 왕의 묘호에도 원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충(忠)'..
1270년 개경 환도는 무신정권 시대의 종식을 알렸지만, 모든 이들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몽골과 맞서 싸워온 삼별초는 항복이나 다름없는 이 결정에 반발하며, 독자적인 항쟁의 길로 나섭니다. 이번 편에서는 진도와 제주로 이어진 삼별초의 항쟁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삼별초, 몽골과 맞선 특수부대2. 배중손, 봉기를 일으키다3. 진도에서 제주로4. 1273년, 항쟁의 끝삼별초, 몽골과 맞선 특수부대최우가 만든 정예 부대삼별초는 원래 최우가 도적을 막기 위해 조직한 야별초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후 좌별초·우별초·신의군으로 확대 개편되며, 대몽 항쟁의 최전선을 지키는 정예 부대로 성장했습니다.무신정권과 함께한 30여 년삼별초는 최씨 정권의 사병적 성격을 지니면서도, 실제로 몽골과의 여..
1258년 최씨 정권이 무너졌지만, 무신들의 권력은 곧바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준에 이어 임연이 권력을 장악하며 왕권 회복은 계속 지연되었습니다. 그러나 몽골과의 화친이 무르익으면서, 100년 가까이 이어진 무신정권도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무신정권의 마지막과 개경 환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김준에서 임연으로2. 원종의 태자 외교3. 임유무의 최후4. 1270년, 개경 환도김준에서 임연으로김준의 집권과 견제최의를 제거한 김준은 이후 상당 기간 권력을 잡았지만, 그 역시 점차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왕실은 은밀히 그를 견제할 방법을 모색했습니다.임연, 김준을 제거하다1268년, 임연은 원종의 뜻을 등에 업고 김준을 제거하며 새로운 권력자로 떠올..
1196년 최충헌이 세운 이래 4대에 걸쳐 이어진 최씨 정권은, 몽골과의 끝없는 전쟁 속에서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강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전쟁을 이어가려는 최씨 정권에 대한 불만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최씨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최우에서 최항, 최의로2. 강화론과 항전론의 대립3. 1258년, 김준의 정변4. 무너진 4대 60여 년의 권력최우에서 최항, 최의로강화 천도를 이끈 최우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는 강화도 천도를 주도하며 오랜 기간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시기 팔만대장경 조판 등 굵직한 사업들이 함께 진행되었습니다.최항과 최의의 시대최우 사후 아들 최항이, 이어 손자 최의가 권력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를 거듭할수록 정권의 ..
팔만대장경이 조판되는 16년 동안에도, 몽골의 침입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살리타이가 처인성에서 목숨을 잃은 뒤에도 몽골은 계속해서 새로운 장수를 보내며 고려를 압박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계속된 몽골의 침입과, 김윤후가 다시 한번 활약하는 충주성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끝나지 않는 몽골의 침입2. 초토화되는 국토3. 1253년, 충주성 전투4. 다시 한번 증명된 저력끝나지 않는 몽골의 침입지휘관이 바뀌어도 계속된 침공살리타이 사후에도 몽골은 당구, 야굴 등 새로운 장수를 앞세워 거듭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고려는 무려 여섯 차례에 걸친 대규모 침입을 겪게 됩니다.강화도만은 건드리지 못한 몽골몽골은 육지 곳곳을 초토화시켰지만, 끝내 강화도의 조정을 무너뜨리지는 ..
처인성에서 살리타이를 물리쳤지만, 몽골과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강화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거란 침입 때 만들었던 초조대장경마저 불에 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고려는 다시 한번 부처의 힘을 빌리기로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초조대장경의 소실2. 1236년, 재조대장경 사업의 시작3. 16년에 걸친 대역사4. 팔만대장경이 남긴 것초조대장경의 소실불타버린 200년의 결실1011년 거란 침입 당시 조판을 시작해 200년 가까이 보존해 온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과정에서 대구 부인사가 불타면서 함께 소실되고 말았습니다.국난과 함께 사라진 문화유산200년 넘게 보존되어 온 귀중한 문화유산이 전쟁 속..
고려의 강화도 천도는 몽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살리타이는 다시 대군을 이끌고 남하했고, 이번에는 개경을 넘어 더 깊숙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름조차 낯선 작은 토성 처인성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번 편에서는 몽골의 2차 침입과 처인성 전투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몽골의 2차 침입2. 남하하는 살리타이3. 처인성의 승려 김윤후4. 화살 한 발이 바꾼 전쟁몽골의 2차 침입천도를 꾸짖은 살리타이1232년 8월, 살리타이는 고려가 강화도로 천도하고 몽골이 세운 다루가치를 살해한 것을 문제 삼으며 다시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국왕이 육지로 나올 것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이를 거부했습니다.서경의 반적과 손을 잡다살리타이는 고려를 배신하고 몽골에 투항한 홍복원 세력..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앞에서 대부분의 성이 무너졌지만, 귀주성만은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이 경험을 지켜본 집권자 최우는 정면 대결 대신 전혀 다른 방식의 항전을 택합니다. 바로 수도를 섬으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232년 단행된 강화도 천도의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몽골의 요구와 고려의 선택2. 최우, 천도를 결정하다3. 조정의 반발과 강행4. 강화도, 새로운 임시 수도몽골의 요구와 고려의 선택1231년 화친과 다루가치 설치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이후 고려는 몽골과 화친을 맺었지만, 몽골은 서경 등 여러 곳에 다루가치를 두어 고려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고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굴욕적인 조치였습니다.몽골이 약한 바다초원에서 일어난 몽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