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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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말고, 이해하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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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문벌귀족사회의 성립 — 음서제·공음전과 경원 이씨의 부상

거란과의 전쟁이 끝나고 오랜 평화가 이어지자, 고려 사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과거제를 통해 등용된 관료들이 점차 특정 가문 중심으로 세력을 굳히며, 대대로 권력을 대물림하는 문벌귀족사회가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문벌귀족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평화가 낳은 새로운 지배층2. 음서제, 대물림되는 관직3. 공음전, 세습되는 경제력4. 대표 가문, 경원 이씨의 부상평화가 낳은 새로운 지배층과거제 관료층의 세력화광종 대에 도입된 과거제를 통해 등용된 관료들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성종 대의 유교적 체제 정비와 맞물려, 이들은 고려 정치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습니다.세습되는 권력본래 실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뽑던 과..

카테고리 없음 2026. 8. 15. 05:50
#034 나성과 천리장성, 국경을 지키다 — 전후 국경 방비의 완성

귀주대첩으로 거란의 침공을 완전히 물리친 고려였지만, 조정은 여기서 안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수도가 함락되는 위기를 겪지 않기 위해, 고려는 본격적으로 국경과 수도의 방비를 다지기 시작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개경을 둘러싼 나성과 북방의 천리장성이 축조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029년, 개경을 둘러싼 나성2. 천리장성, 북방의 방패를 쌓다3. 초조대장경, 부처의 힘을 빌리다4. 전쟁 이후, 고려의 안정기1029년, 개경을 둘러싼 나성수도 함락의 뼈아픈 교훈2차 침입 당시 개경이 함락되었던 경험은 고려 조정에 깊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도성 자체를 지킬 성벽이 부실했다는 반성 속에서, 개경을 둘러싼 대규모 성곽을 쌓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나성의 완공1009년경 시작된 나성 축조는 여러..

카테고리 없음 2026. 8. 14. 15:55
#033 거란의 3차 침입과 귀주대첩 — 소배압의 침공과 강감찬의 대승

2차 침입에서 물러난 뒤에도 거란은 강동 6주를 돌려달라며 고려를 계속 압박했습니다. 고려가 이를 거부하자 몇 해에 걸쳐 국지적인 충돌이 이어졌고, 결국 거란은 1018년 다시 한번 대군을 동원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이 이끈 귀주대첩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2. 1018년, 소배압의 침공3. 흥화진 물막이 작전4. 1019년, 귀주대첩강동 6주를 둘러싼 갈등거란의 강동 6주 반환 요구2차 침입에서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한 거란은 이 손실을 강동 6주 반환 요구로 만회하려 했습니다. 서희의 담판으로 정식 인정받은 땅을 순순히 내줄 수 없었던 고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몇 해에 걸친 국지전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국경 지역에서는 크..

카테고리 없음 2026. 8. 13. 10:47
#032 거란의 2차 침입과 강조의 정변 — 개경 함락부터 양규의 반격까지

서희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은 고려와 거란 사이에는 한동안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009년 고려 조정에서 벌어진 정변 하나가 다시 전쟁의 불씨를 지피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이 다시 고려를 침공한 2차 침입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009년, 강조의 정변2. 1010년, 거란의 재침공3. 개경 함락과 현종의 피난4. 양규의 반격과 거란의 철수1009년, 강조의 정변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전횡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김치양과 사사로이 관계를 맺고, 자신들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는 왕실의 정통성을 크게 흔드는 일이었고, 조정 안팎에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강조, 군사를 일으켜 현종을 옹립하다서북면도순검사 강조는 군사를 이끌..

카테고리 없음 2026. 8. 12. 09:53
#031 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서희는 어떻게 강동 6주를 얻었을까 — 소손녕과의 담판 전 과정

성종이 유교 정치의 틀을 세우며 나라 안을 정비하던 무렵, 북쪽에서는 새로운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993년, 거란의 대군이 고려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조정이 항복과 할지론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 순간, 홀로 담판을 자청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바로 서희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993년 거란의 1차 침입과, 서희가 말로 전쟁을 끝내고 강동 6주를 얻어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93년, 거란의 1차 침입2. 서희, 담판을 자청하다3. 국경 담판, 말로 싸우다4. 강동 6주, 담판이 남긴 결실993년, 거란의 1차 침입 소손녕의 침공과 봉산 전투993년, 거란은 동경유수 소손녕을 앞세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거란군은 청천강 이북의 봉산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렸고, "거란이 이미 고..

카테고리 없음 2026. 8. 11. 22:36
#030 성종, 유교 정치의 틀을 세우다 — 시무 28조부터 12목 설치까지

광종이 강력한 왕권을 세웠다면, 그 뒤를 이은 성종은 그 힘을 바탕으로 유교적 통치 이념에 따라 국가 체제를 정교하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최승로의 건의로 시작된 성종의 체제 정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2. 2성 6부제, 중앙 관제를 정비하다3. 983년, 12목과 지방관 파견4. 국자감과 유교 인재 양성982년, 최승로의 시무 28조5조 정적평, 다섯 왕을 평가하다982년, 성종의 요청으로 신하 최승로는 태조부터 경종까지 다섯 왕의 정치를 평가한 '오조정적평'과 함께 개혁안을 담은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 상소에서 최승로는 광종의 지나친 왕권 강화와 공신 숙청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시무 28조, 유교 정치의 청사진최승로는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데 ..

카테고리 없음 2026. 8. 10. 21:07
#029 광종, 왕권 강화를 이루다 — 노비안검법부터 과거제까지

태조 왕건이 호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면, 그의 아들 광종은 정반대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강력한 개혁으로 호족의 힘을 꺾고 왕권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세운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종이 펼친 개혁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56년, 노비안검법2. 958년, 과거제의 도입3. 칭제건원과 공신 숙청4. 광종 개혁이 남긴 의미956년, 노비안검법호족의 힘, 사병과 노비에서 나오다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들은 전쟁 포로나 몰락한 양인을 노비로 삼으며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이 노비들은 호족의 경제적 기반이자 사병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호족의 권력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부당하게 노비가 된 자를 풀어주다956년,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시행해 원래 양인이었다가 불법으로 노비가..

카테고리 없음 2026. 8. 9. 21:05
#028 태조 왕건, 새 나라의 기틀을 다지다 — 혼인정책부터 훈요십조까지

936년 후삼국통일을 완성한 태조 왕건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강력한 호족들을 어떻게 하나의 나라 안으로 끌어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조 왕건이 고려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펼친 여러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 사심관제도와 기인제도3. 943년, 훈요십조를 남기다4. 북진정책과 발해 유민 포섭혼인정책, 호족을 가족으로 만들다29명의 부인, 정략혼의 규모태조 왕건은 전국 각지의 유력 호족 가문과 혼인을 맺어 그들을 왕실의 인척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 결과 왕건은 무려 29명의 부인을 두게 되었는데, 이는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호족을 통합하기 위한 철저한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왕실 인척이 된 호족들혼인을..

카테고리 없음 2026. 8. 8. 20:52
#027 왕건, 후삼국통일을 완성하다 — 공산 전투부터 후백제 멸망까지

918년 고려를 세운 왕건 앞에는 여전히 강력한 후백제와 신라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견훤의 기세에 크게 밀리기도 했지만, 왕건은 결국 형세를 뒤집으며 후삼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927년 공산 전투부터 936년 후백제 멸망까지, 후삼국통일의 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27년, 공산 전투의 참패2. 930년, 고창 전투의 역전3. 935년, 견훤과 신라의 귀부4. 936년, 후백제 멸망과 통일의 완성927년, 공산 전투의 참패견훤, 경주를 침공하다927년, 견훤은 신라의 수도 경주를 기습해 경애왕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경순왕을 새로운 왕으로 세웠습니다. 이는 신라를 사실상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시도였습니다.공산 동수에서 홀로 도망친 왕건신라를 돕기 위해 출병한 ..

카테고리 없음 2026. 8. 7. 20:30
#026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고려 건국 — 미륵불 자처부터 918년 고려 건국까지

901년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는 한때 후삼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며 기세를 떨쳤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커질수록 그의 통치는 점점 더 잔혹해졌고, 결국 자신이 세운 신하들의 손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고려 건국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미륵불을 자처한 궁예의 폭정2. 왕건, 신망을 얻다3. 918년, 궁예의 축출과 왕건의 즉위4. 고려, 새 나라의 문을 열다미륵불을 자처한 궁예의 폭정국호 변경과 미륵관심법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는 다시 태봉으로 바꾸며 신정적 전제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한 그는 '미륵관심법'이라는 독심술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 세력을 가차 없이 제거했습니다.부인..

카테고리 없음 2026. 8. 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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