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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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외우지 말고, 이해하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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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 태종의 왕권 강화 — 사병 혁파부터 6조직계제까지

두 차례의 유혈 충돌을 겪으며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자와 공신들이 저마다 거느린 사병이었습니다. 그는 즉위 이후 이러한 위협 요소를 뿌리 뽑고, 왕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사병 혁파의 완성2. 6조직계제, 왕이 직접 다스리다3. 호패법, 백성을 파악하다4. 신문고, 백성의 목소리를 듣다사병 혁파의 완성정도전이 남긴 미완의 과제아이러니하게도 정도전이 추진하다 목숨을 잃었던 사병 혁파는, 그를 제거한 태종의 손으로 완성됩니다. 왕자와 종친, 공신들이 거느리던 사병은 모두 국가 소속 군대로 흡수되었습니다.두 번 다시 없을 왕자의 난이로써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

카테고리 없음 2026. 9. 12. 20:31
#060 1차 왕자의 난과 정도전의 죽음 — 세자 책봉 갈등이 부른 비극

국호를 정하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새 왕조의 겉모습은 안정되어 갔지만, 그 이면에서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갈등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조차 이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398년 벌어진 1차 왕자의 난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세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2. 정도전과 사병 혁파3. 1398년, 이방원의 거병4. 왕자의 난이 남긴 것세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막내아들 방석의 세자 책봉이성계는 개국 초기, 여러 아들 중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이는 건국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다섯째 아들 이방원을 비롯한 다른 왕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쌓여가는 불만특히 위화도 회군과 왕조 건국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이방원은, 자신이 아..

카테고리 없음 2026. 9. 11. 16:54
#059 한양 천도, 새 왕조의 수도를 세우다 — 정도전이 설계한 유교 도성

1392년 왕위에 오른 이성계 앞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새 나라의 이름을 정하는 일부터, 오랜 세월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경을 벗어나 새로운 수도를 세우는 일까지 말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국호 확정과 한양 천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국호, 조선으로 정해지다2. 새 수도를 향한 고민3. 정도전, 한양을 설계하다4. 유교 이념이 새겨진 도성국호, 조선으로 정해지다화령과 조선, 두 후보즉위 직후 이성계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새 국호 후보로 '화령'과 '조선'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과 관련된 이름이었고, 조선은 단군의 옛 나라를 계승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역사성을 택하다명나라는 두 후보 중 조선을 선택했고, 1393년 국호는 정식으로 조선으로 확..

카테고리 없음 2026. 9. 10. 20:53
#058 1392년, 조선이 건국되다 — 공양왕 폐위부터 이성계 즉위까지

선죽교에서 정몽주가 목숨을 잃으면서,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마지막 저항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신진사대부 앞을 가로막을 세력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392년 7월,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 새롭게 문을 여는 그 순간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지다2. 공양왕의 폐위3. 신하들의 추대4. 새 왕조, 조선의 탄생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지다정몽주 사후의 조정정몽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 조정 안에서 이성계 세력에 맞설 만한 정치적 구심점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남은 신하들 대부분은 이미 이성계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빨라진 왕조 교체의 시계더 이상 걸림돌이 없어지자,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은 새 왕조 건국을 향한 절차를 빠르게 밟아나가기 시작했습..

카테고리 없음 2026. 9. 9. 20:46
#057 정몽주와 선죽교, 고려 충신의 최후 — 하여가와 단심가에 담긴 신념

과전법으로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까지 무너뜨린 이성계 세력은 이제 새로운 왕조를 향한 마지막 걸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같은 신진사대부였던 정몽주는, 왕조를 바꾸는 것만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정몽주의 마지막 순간, 선죽교의 비극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갈라선 신진사대부2. 이방원의 낙마 사건3. 하여가와 단심가4. 1392년, 선죽교의 비극갈라선 신진사대부역성혁명파와 온건개혁파고려 말 신진사대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왕조 자체를 바꾸자는 역성혁명파와, 정몽주를 중심으로 고려 왕조 안에서 점진적 개혁을 이루자는 온건개혁파였습니다.같은 뜻에서 다른 길로한때 함께 개혁을 논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과전법 시행 이후 왕조 교체 문제를 두고 ..

카테고리 없음 2026. 9. 8. 23:44
#056 이성계의 권력 장악과 과전법 — 정도전과 함께한 전제 개혁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을 몰아낸 이성계는 고려 조정의 실권을 완전히 손에 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왕위를 넘보지 않고, 먼저 오랫동안 곪아온 토지 문제부터 손보기로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정도전과 함께 추진한 과전법과 전제 개혁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창왕 옹립과 조민수의 실각2. 정도전, 이성계와 손잡다3. 1391년, 과전법 시행4.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이 무너지다창왕 옹립과 조민수의 실각우왕의 아들, 창왕우왕을 폐위시킨 뒤 이성계와 함께 회군을 이끌었던 조민수는 우왕의 아들 창왕을 새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성계의 의도와는 다른 결정이었습니다.조민수를 몰아내다이성계는 곧 조준 등 신진사대부와 손잡고 조민수를 탄핵해 실각시켰습니다. 이로써 조정 내 권력은 점차 이성계 한 사람에게..

카테고리 없음 2026. 9. 7. 10:43
#055 위화도 회군, 고려의 운명이 바뀌다 — 4불가론부터 우왕 폐위까지

이인임을 몰아내고 조정을 함께 이끌게 된 최영과 이성계였지만, 두 사람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요동 정벌 논쟁은, 결국 고려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꾸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편에서는 1388년 위화도 회군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명나라의 철령위 통보2. 이성계의 4불가론3. 위화도에서 멈춰선 대군4. 회군, 개경으로 향하다명나라의 철령위 통보철령 이북을 요구하다1387년, 요동의 몽골 잔여 세력 나하추의 항복을 받아낸 명나라는 이듬해 철령위를 설치해 철령 이북 땅을 자신들이 직접 다스리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공민왕 대에 어렵게 되찾은 쌍성총관부 일대 영토를 다시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 통보에, 고려 조정은 강하게 반발..

카테고리 없음 2026. 9. 6. 15:39
#054 이인임 정권과 신진사대부의 도전 — 정몽주와 정도전의 등장

최영과 이성계가 전장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 조정 안에서는 이인임을 중심으로 한 권문세족이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리학을 익힌 새로운 지식인 계층, 신진사대부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인임 정권과 신진사대부의 갈등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이인임, 권력을 독점하다2. 신진사대부, 새로운 세력의 등장3. 정몽주와 정도전4. 1388년, 이인임의 몰락이인임, 권력을 독점하다어린 왕을 등에 업은 실권자우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이인임은 왕을 대신해 사실상 국정을 좌우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측근들로 조정 요직을 채우며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졌습니다.친원 노선과 부정부패이인임 정권은 원(북원)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노선을 취하며 새롭게 떠..

카테고리 없음 2026. 9. 5. 19:37
#053 최영과 이성계, 명장으로 우뚝 서다 — 홍산대첩부터 황산대첩까지

우왕 즉위 이후에도 왜구의 침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대담해진 왜구는 내륙 깊숙이까지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의 시간은 동시에, 최영과 이성계라는 두 인물이 고려 최고의 명장으로 발돋움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두 사람이 이름을 떨친 결정적인 전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376년, 최영의 홍산대첩2. 최무선과 화포의 등장3. 1380년, 진포대첩4. 이성계의 황산대첩1376년, 최영의 홍산대첩노장, 다시 전장에 서다1376년, 왜구가 부여 홍산까지 침입해오자 이미 노년에 접어든 최영이 직접 전장에 나섰습니다. 주변에서는 그의 노쇠함을 걱정했지만, 최영은 이를 물리치고 선봉에 섰습니다.입가에 화살을 맞고도전투 중 입술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입고도 최영..

카테고리 없음 2026. 9. 3. 20:05
#052 공민왕의 시해와 우왕의 즉위 — 자제위 사건부터 이인임의 실권 장악까지

기철 숙청, 쌍성총관부 수복 등 과감한 개혁을 이끌었던 공민왕이었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통치는 점점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리고 1374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의 삶은 갑작스럽게 막을 내리고 맙니다. 이번 편에서는 공민왕의 시해와 어린 우왕의 즉위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노국공주의 죽음과 무너진 공민왕2. 자제위, 위험한 신변 조직3. 1374년, 시해의 밤4. 어린 우왕의 즉위노국공주의 죽음과 무너진 공민왕깊은 사랑, 노국대장공주공민왕은 원나라 출신 왕비 노국대장공주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1365년 그녀가 난산 끝에 세상을 떠나자, 공민왕은 극심한 슬픔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습니다.점점 흔들리는 통치신돈에게 정사를 맡기고 향락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한..

카테고리 없음 2026. 9. 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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