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의 난으로 왕실의 권위가 크게 흔들린 뒤, 개경의 문벌귀족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 중심에 승려 묘청이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내세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진압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2.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3. 1135년, 대위국 반란4. 김부식의 진압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서경 길지설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쇠하고 서경(지금의 평양)에 왕성한 기운이 있다는 풍수설을 내세우며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건의했습니다. 정지상 등 서경 출신 관료들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탰습니다.칭제건원과 금국정벌론묘청 세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려도 황제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사용해야 하며 금나라를 정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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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17. 2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