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사화로 조광조와 신진 사림이 몰락한 뒤, 조선의 정치는 다시 훈구 세력이 주도하는 국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성격의 갈등, 즉 왕비 집안 간의 외척 다툼이 새로운 사화를 불러오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1545년 을사사화를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두 왕비, 두 외척2. 인종의 짧은 재위3. 명종 즉위와 문정왕후의 수렴청정4. 1545년, 대윤의 몰락두 왕비, 두 외척장경왕후와 대윤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는 세자(훗날 인종)를 낳고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오빠 윤임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을 대윤이라 불렀습니다.문정왕후와 소윤중종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는 이후 경원대군(훗날 명종)을 낳았습니다. 그녀의 동생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외척 세력은 소윤이라 불렸습니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진압된 뒤에도 고려의 문신 중심 체제는 흔들리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오랫동안 차별받아온 무신들의 불만이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170년 폭발한 무신정변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오랫동안 쌓인 무신의 불만2. 의종의 향락과 문신 우대3. 1170년, 보현원 사건4. 정변의 결말과 의종 폐위오랫동안 쌓인 무신의 불만문신 중심 체제의 그늘고려는 건국 이래 문신을 우대하고 무신을 상대적으로 낮게 대우하는 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 아무리 큰 군공을 세워도 무신이 오를 수 있는 관직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는 오랜 시간 무신들의 불만으로 쌓여갔습니다.문신에게 당하는 수모일부 문신들은 노골적으로 무신을 얕보고 모욕하기까지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