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유혈 충돌을 겪으며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자와 공신들이 저마다 거느린 사병이었습니다. 그는 즉위 이후 이러한 위협 요소를 뿌리 뽑고, 왕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사병 혁파의 완성2. 6조직계제, 왕이 직접 다스리다3. 호패법, 백성을 파악하다4. 신문고, 백성의 목소리를 듣다사병 혁파의 완성정도전이 남긴 미완의 과제아이러니하게도 정도전이 추진하다 목숨을 잃었던 사병 혁파는, 그를 제거한 태종의 손으로 완성됩니다. 왕자와 종친, 공신들이 거느리던 사병은 모두 국가 소속 군대로 흡수되었습니다.두 번 다시 없을 왕자의 난이로써 왕위를 위협할 수 있는 ..
태조 왕건이 호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면, 그의 아들 광종은 정반대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강력한 개혁으로 호족의 힘을 꺾고 왕권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세운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종이 펼친 개혁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56년, 노비안검법2. 958년, 과거제의 도입3. 칭제건원과 공신 숙청4. 광종 개혁이 남긴 의미956년, 노비안검법호족의 힘, 사병과 노비에서 나오다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들은 전쟁 포로나 몰락한 양인을 노비로 삼으며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이 노비들은 호족의 경제적 기반이자 사병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호족의 권력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부당하게 노비가 된 자를 풀어주다956년,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시행해 원래 양인이었다가 불법으로 노비가..
지난 편에서 #009~018을 통해 삼국시대 전체 흐름을 연대순으로 정리해봤습니다. 이번 편부터는 삼국통일 이후 새로운 시대, 통일신라와 발해가 함께하는 남북국시대를 다뤄보겠습니다. 그 첫 이야기는 통일 직후 신라를 이끈 신문왕이 어떻게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했는지입니다. 저는 통일 직후 벌어진 반란과 개혁 과정을 보면, 영토를 통일하는 것 못지않게 그 이후 나라의 틀을 다시 짜는 작업이 훨씬 더 지난한 과정이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목차1. 681년, 김흠돌의 난과 왕권 강화2. 지방 제도를 정비하다 — 9주 5소경3. 인재를 기르다 — 국학의 설립4. 경제 개혁 —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681년, 김흠돌의 난과 왕권 강화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신문왕은 즉위하자마자 큰 위기를 맞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