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을 통해 학문적 토대를 다진 세종에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고민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려운 한자 때문에 자신의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백성들의 답답함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세종 최고의 업적으로 꼽히는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설움2. 1443년, 훈민정음 창제3. 신하들의 반대4. 1446년, 반포와 그 원리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설움글자가 없어 억울했던 사람들당시 문자 생활은 오로지 한자로만 이루어졌는데, 이는 오랜 시간 학문을 닦은 소수의 지식인만이 익힐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다수 백성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이를 글로 남기거나 호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세종의 애민 정신세종은 이러한 현실을 깊이 안타까워하며, 백성 누구나 쉽게 배우고..
처인성에서 살리타이를 물리쳤지만, 몽골과의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강화도로 옮기는 과정에서 거란 침입 때 만들었던 초조대장경마저 불에 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고려는 다시 한번 부처의 힘을 빌리기로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초조대장경의 소실2. 1236년, 재조대장경 사업의 시작3. 16년에 걸친 대역사4. 팔만대장경이 남긴 것초조대장경의 소실불타버린 200년의 결실1011년 거란 침입 당시 조판을 시작해 200년 가까이 보존해 온 초조대장경은,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과정에서 대구 부인사가 불타면서 함께 소실되고 말았습니다.국난과 함께 사라진 문화유산200년 넘게 보존되어 온 귀중한 문화유산이 전쟁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