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호를 정하고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며 새 왕조의 겉모습은 안정되어 갔지만, 그 이면에서는 후계 구도를 둘러싼 갈등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던 정도전조차 이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398년 벌어진 1차 왕자의 난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세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2. 정도전과 사병 혁파3. 1398년, 이방원의 거병4. 왕자의 난이 남긴 것세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막내아들 방석의 세자 책봉이성계는 개국 초기, 여러 아들 중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이는 건국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운 다섯째 아들 이방원을 비롯한 다른 왕자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쌓여가는 불만특히 위화도 회군과 왕조 건국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이방원은, 자신이 아..
과전법으로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까지 무너뜨린 이성계 세력은 이제 새로운 왕조를 향한 마지막 걸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같은 신진사대부였던 정몽주는, 왕조를 바꾸는 것만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정몽주의 마지막 순간, 선죽교의 비극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갈라선 신진사대부2. 이방원의 낙마 사건3. 하여가와 단심가4. 1392년, 선죽교의 비극갈라선 신진사대부역성혁명파와 온건개혁파고려 말 신진사대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왕조 자체를 바꾸자는 역성혁명파와, 정몽주를 중심으로 고려 왕조 안에서 점진적 개혁을 이루자는 온건개혁파였습니다.같은 뜻에서 다른 길로한때 함께 개혁을 논하던 두 사람이었지만, 과전법 시행 이후 왕조 교체 문제를 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