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겸의 난으로 왕실의 권위가 크게 흔들린 뒤, 개경의 문벌귀족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 중심에 승려 묘청이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내세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진압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2.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립3. 1135년, 대위국 반란4. 김부식의 진압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서경 길지설묘청은 개경의 지덕이 쇠하고 서경(지금의 평양)에 왕성한 기운이 있다는 풍수설을 내세우며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건의했습니다. 정지상 등 서경 출신 관료들도 이 주장에 힘을 보탰습니다.칭제건원과 금국정벌론묘청 세력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려도 황제를 칭하고 독자 연호를 사용해야 하며 금나라를 정벌해야..
태조 왕건이 호족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면, 그의 아들 광종은 정반대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강력한 개혁으로 호족의 힘을 꺾고 왕권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세운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종이 펼친 개혁 정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956년, 노비안검법2. 958년, 과거제의 도입3. 칭제건원과 공신 숙청4. 광종 개혁이 남긴 의미956년, 노비안검법호족의 힘, 사병과 노비에서 나오다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호족들은 전쟁 포로나 몰락한 양인을 노비로 삼으며 세력을 키워왔습니다. 이 노비들은 호족의 경제적 기반이자 사병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호족의 권력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부당하게 노비가 된 자를 풀어주다956년, 광종은 노비안검법을 시행해 원래 양인이었다가 불법으로 노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