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과 개화 정책이 이어지자, 조선 사회 안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목소리도 함께 커졌습니다. 서양과 일본을 오랑캐로 보며 전통 질서를 지키자는 이들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이들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위정척사 운동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살펴보겠습니다.

위정척사 사상의 뿌리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다
위정척사는 '정(正)을 지키고 사(邪)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성리학적 질서를 바른 것으로 보고 서양의 종교와 문물을 사악한 것으로 배척하는 사상입니다. 이는 천주교와 서양 세력이 들어오던 19세기 초부터 이어져 온 흐름이었습니다.
이항로와 기정진
병인양요 무렵에는 이항로, 기정진 같은 학자들이 서양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전론을 폈습니다. 이들은 당시 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위정척사(衛正斥邪) —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고 서양의 종교와 문물을 배척하자는 사상입니다.
📌 핵심 정리
· 서양 세력의 접근과 함께 이어진 사상적 흐름
· 이항로·기정진 등이 서양과의 교류 반대(주전론)
· 대원군의 쇄국 정책을 뒷받침
최익현의 개항 반대 상소
도끼를 지고 올린 상소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앞두고 최익현은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서 개항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것입니다.
왜양일체론
최익현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을 서양과 같은 침략 세력으로 보는 왜양일체론을 내세웠습니다. 외세의 침략과 경제적 피해를 우려했지만, 성리학적 질서를 지키려는 입장에서 새로운 제도와 문물의 수용도 거부했다는 점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정척사파의 주장이 시대의 흐름과는 맞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 자체는 진심이었어요. 방법은 달랐지만 걱정한 대상은 같았던 거죠."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 — 일본과 서양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보아 일본과의 교류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 핵심 정리
· 1876년 최익현, 도끼를 들고 개항 반대 상소
· 왜양일체론으로 일본과의 조약 반대
· 개항 결정은 막지 못했으나 반대 여론 형성
『조선책략』과 영남만인소
미국과 손잡으라는 제안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김홍집이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쓴 『조선책략』을 가져왔습니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청과 친하고 일본과 결속하며 미국과 연합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유생들의 집단 반발
이 책의 내용이 알려지자 1881년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이 만인소를 올려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억누르면서도 서양과의 수교를 이어갔습니다.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 1881년 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과 서양 수교에 반대해 올린 집단 상소입니다.
📌 핵심 정리
· 『조선책략』, 친청·결일·연미 외교 노선 제시
· 1881년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의 만인소
· 정부는 반발을 누르며 수교 추진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서양과 맺은 첫 조약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서양 국가와 맺은 첫 조약이었고, 사치품에는 최대 30%, 일용품에는 최대 1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 들어간 점이 강화도 조약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남은 불평등
이 조약은 조선의 법제가 개선되기 전까지 적용하는 영사재판권과 미국에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최혜국 대우를 담아 불평등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거중조정 조항도 있었지만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보장하는 동맹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은 이후 영국·독일 등과도 수교했고, 1883년 미국에 보빙사를 파견했습니다.
최혜국 대우 — 한 나라에 준 가장 유리한 조건을 조약을 맺은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주는 규정입니다.
📌 핵심 정리
·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서양과의 첫 수교
· 관세 부과 조항 포함(사치품 최대 30%, 일용품 최대 10%)
· 영사재판권·미국에 일방적인 최혜국 대우 등 불평등 요소
위정척사 운동은 개항과 서양 수교에 맞서는 강력한 반대 여론을 형성했지만, 정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며 미국과의 조약으로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개화 정책에 대한 불만은 정치 바깥에서 곧 폭발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구식 군인들의 분노가 터진 임오군란을 다뤄보겠습니다.
📌 위정척사와 조미수호통상조약 타임라인
1876년 — 최익현, 개항 반대 상소(왜양일체론)
1880년 — 김홍집, 『조선책략』 도입
1881년 — 영남만인소
1882년 5월 —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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