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외세의 경제 침투와 지방 관리의 수탈로 농민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졌습니다. 한편 최제우 사후에도 교세를 키워온 동학은 농민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둘이 만나 터져 나온 것이 1894년 동학농민운동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1차 봉기의 전개를 살펴보겠습니다.

교조신원운동과 동학의 성장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요구
동학 교단은 1890년대 초, 1864년에 처형된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동학 신앙을 인정받으려는 교조신원운동을 벌였습니다. 1892년 삼례 집회, 1893년 광화문 복합상소와 보은 집회 등으로 활동이 확대되었습니다.
종교운동에서 사회운동으로
보은 집회에서는 외세를 물리치자는 구호도 등장했습니다. 종교적 탄압에 대한 항의가 사회·정치 문제로 넓어지는 가운데, 동학의 조직망은 농민들의 요구를 모으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 — 동학의 교조 최제우의 죄명을 벗기고 동학을 공인해달라고 요구한 운동입니다.
📌 핵심 정리
· 삼례·광화문·보은 집회로 규모 확대
· 외세 배척 구호가 나오며 사회운동으로 변화
· 동학이 농민 불만을 결집하는 조직으로 성장
1894년, 고부 봉기
조병갑의 수탈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을 동원해 만석보라는 농업용 보(물을 막아 농경지로 보내는 시설)를 쌓고 물세를 거두는 등 온갖 명목으로 백성을 수탈했습니다. 농민들의 원성이 쌓여가는 가운데 동학 접주 전봉준이 봉기를 주도했습니다.
안핵사의 탄압
1894년 초 고부의 농민들이 관아를 점령하자 조정은 사태를 수습하러 안핵사 이용태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용태는 오히려 봉기 가담자를 가혹하게 탄압했고, 이것이 더 큰 봉기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못된 군수를 몰아내자는 지역 봉기였어요. 그런데 수습하러 온 관리가 오히려 농민을 탄압하면서 불이 전국으로 번졌죠."
안핵사(按覈使) — 지방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진상을 조사하고 수습하기 위해 파견한 임시 관리입니다.
📌 핵심 정리
· 고부 군수 조병갑의 만석보 수세 등 수탈
· 1894년 초 전봉준 주도로 고부 봉기
· 안핵사 이용태의 탄압이 재봉기의 불씨가 됨
백산에서 전주성까지
무장 재봉기·백산 집결과 황토현 승리
전봉준은 손화중·김개남 등과 함께 1894년 음력 3월 무장에서 다시 봉기한 뒤 백산에 농민군을 집결시켰습니다. 보국안민과 제폭구민을 내걸고 진격한 농민군은 황토현에서 관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전주성 점령
기세를 탄 농민군은 황룡촌 전투에서도 승리하고 호남의 중심 도시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정부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해 청에 군대를 요청했습니다.
보국안민·제폭구민 — 각각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뜻과, 폭정을 없애 백성을 구한다는 뜻의 동학농민군 구호입니다.
📌 핵심 정리
· 무장 재봉기 후 백산 집결
· 황토현·황룡촌 전투에서 관군 격파
· 호남의 중심 전주성을 점령, 정부는 청에 원군 요청
전주화약과 집강소
청일 양국의 출병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자, 일본도 톈진조약을 구실로 군대를 보냈습니다. 외국 군대가 한반도에 머물 명분을 주지 않으려는 농민군과 정부는 서둘러 협상에 나섰습니다.
폐정 개혁과 농민 자치
농민군은 정부군과 협상한 뒤 전주성에서 철수했습니다. 이 협상을 통상 전주화약이라고 부르지만, 합의문과 구체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의가 있습니다. 이후 전라도 여러 지역에서 집강소를 통해 폐정 개혁을 추진했으며, 그 운영과 영향력은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청일 양국 군대가 남아 있었다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집강소(執綱所) —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각지에 설치된 농민 자치 기구입니다.
📌 핵심 정리
· 청군 파병, 톈진조약을 구실로 일본도 출병
· 정부군과 협상 후 전주성 철수(전주화약)
· 집강소 설치, 그러나 청일 군대는 철수하지 않음
고부 봉기는 무장 재봉기와 전주성 점령으로 확대되었고, 농민들의 개혁 요구는 정부군과의 협상과 집강소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청일 양국 군대가 머문 한반도에는 새로운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농민군의 2차 봉기를 살펴보겠습니다.
📌 동학농민운동 1차 봉기 타임라인
1892~1893년 — 교조신원운동(삼례·광화문·보은 집회)
1894년 초 — 전봉준, 고부 봉기
1894년 음력 3~4월 — 무장 재봉기·백산 집결, 황토현 승리, 전주성 점령
1894년 음력 5월 이후 — 전주성 철수, 이후 집강소 개혁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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