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죽교에서 정몽주가 목숨을 잃으면서,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마지막 저항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신진사대부 앞을 가로막을 세력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1392년 7월, 고려가 저물고 조선이 새롭게 문을 여는 그 순간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지다2. 공양왕의 폐위3. 신하들의 추대4. 새 왕조, 조선의 탄생마지막 걸림돌이 사라지다정몽주 사후의 조정정몽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 조정 안에서 이성계 세력에 맞설 만한 정치적 구심점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남은 신하들 대부분은 이미 이성계 쪽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빨라진 왕조 교체의 시계더 이상 걸림돌이 없어지자,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은 새 왕조 건국을 향한 절차를 빠르게 밟아나가기 시작했습..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을 몰아낸 이성계는 고려 조정의 실권을 완전히 손에 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왕위를 넘보지 않고, 먼저 오랫동안 곪아온 토지 문제부터 손보기로 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정도전과 함께 추진한 과전법과 전제 개혁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창왕 옹립과 조민수의 실각2. 정도전, 이성계와 손잡다3. 1391년, 과전법 시행4. 권문세족의 경제 기반이 무너지다창왕 옹립과 조민수의 실각우왕의 아들, 창왕우왕을 폐위시킨 뒤 이성계와 함께 회군을 이끌었던 조민수는 우왕의 아들 창왕을 새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성계의 의도와는 다른 결정이었습니다.조민수를 몰아내다이성계는 곧 조준 등 신진사대부와 손잡고 조민수를 탄핵해 실각시켰습니다. 이로써 조정 내 권력은 점차 이성계 한 사람에게..
최영과 이성계가 전장에서 명성을 쌓아가는 동안, 조정 안에서는 이인임을 중심으로 한 권문세족이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리학을 익힌 새로운 지식인 계층, 신진사대부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인임 정권과 신진사대부의 갈등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이인임, 권력을 독점하다2. 신진사대부, 새로운 세력의 등장3. 정몽주와 정도전4. 1388년, 이인임의 몰락이인임, 권력을 독점하다어린 왕을 등에 업은 실권자우왕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이인임은 왕을 대신해 사실상 국정을 좌우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측근들로 조정 요직을 채우며 권력 기반을 공고히 다졌습니다.친원 노선과 부정부패이인임 정권은 원(북원)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노선을 취하며 새롭게 떠..
기철 숙청과 쌍성총관부 수복으로 대외적 자주성을 되찾은 공민왕은, 이제 안으로 눈을 돌립니다. 오랜 원 간섭기 동안 권문세족들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와 노비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그는 신돈이라는 파격적인 인물을 등용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신돈의 개혁과 전민변정도감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권문세족과 사회 문제2. 신돈의 등용3. 1366년, 전민변정도감4. 개혁의 좌절권문세족과 사회 문제원 간섭기에 성장한 새 지배층원 간섭기 동안 원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성장한 권문세족은, 불법적으로 백성의 토지를 빼앗아 대농장을 만들고 양인을 노비로 삼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국가 재정과 민생의 위기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이 심해질수록 국가에 세금을 낼 백성은 줄어들고, 힘없는 양인들은 노비로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