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임을 몰아내고 조정을 함께 이끌게 된 최영과 이성계였지만, 두 사람의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요동 정벌 논쟁은, 결국 고려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꾸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편에서는 1388년 위화도 회군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명나라의 철령위 통보2. 이성계의 4불가론3. 위화도에서 멈춰선 대군4. 회군, 개경으로 향하다명나라의 철령위 통보철령 이북을 요구하다1387년, 요동의 몽골 잔여 세력 나하추의 항복을 받아낸 명나라는 이듬해 철령위를 설치해 철령 이북 땅을 자신들이 직접 다스리겠다고 고려에 통보했습니다.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공민왕 대에 어렵게 되찾은 쌍성총관부 일대 영토를 다시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 통보에, 고려 조정은 강하게 반발..
우왕 즉위 이후에도 왜구의 침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대담해진 왜구는 내륙 깊숙이까지 쳐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의 시간은 동시에, 최영과 이성계라는 두 인물이 고려 최고의 명장으로 발돋움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두 사람이 이름을 떨친 결정적인 전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1376년, 최영의 홍산대첩2. 최무선과 화포의 등장3. 1380년, 진포대첩4. 이성계의 황산대첩1376년, 최영의 홍산대첩노장, 다시 전장에 서다1376년, 왜구가 부여 홍산까지 침입해오자 이미 노년에 접어든 최영이 직접 전장에 나섰습니다. 주변에서는 그의 노쇠함을 걱정했지만, 최영은 이를 물리치고 선봉에 섰습니다.입가에 화살을 맞고도전투 중 입술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입고도 최영..
신돈의 개혁이 좌절되던 시기, 고려는 안으로만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북쪽에서는 원명 교체의 혼란 속에 밀려온 홍건적이, 남쪽 해안에서는 왜구가 끊임없이 국토를 유린했습니다. 이 거듭된 외침 속에서 새로운 무장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 그리고 최영과 이성계의 부상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원명 교체와 홍건적의 남하2. 1361년, 개경 함락3. 끊이지 않는 왜구의 침탈4. 새로운 무장 세력의 부상원명 교체와 홍건적의 남하농민 반란에서 시작된 홍건적14세기 중반, 몰락해가던 원나라에 맞서 중국 각지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붉은 두건을 둘렀다 하여 홍건적이라 불린 이들 반란 세력은, 원의 반격에 밀려 고려 국경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습니다.13..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려는 원의 부마국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 원나라 자체가 안팎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립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과감한 개혁에 나선 인물이 바로 공민왕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공민왕의 반원 개혁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1. 흔들리는 원나라, 기회를 엿보다2. 1356년, 기철 세력의 숙청3. 쌍성총관부를 수복하다4.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흔들리는 원나라, 기회를 엿보다쇠퇴하는 원나라14세기 중반, 원나라는 각지에서 일어난 홍건적의 봉기 등으로 국력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대제국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습니다.공민왕, 즉위하다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즉위한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고려의 자주성을 되찾..